피노키오는 정말 구재불능의 거짓말쟁이인가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는 워낙 유명하지만 막상 읽어보려고 하면 거의 300쪽이나 되는 분량에 선뜻 손에 들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말썽을 피우고 장난을 치는 피노키오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대체 왜 이 작품이 명작이라는 칭송을 받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피노키오는 '양치기 소년'과 더불어 대표적인 거짓말쟁이로 알려져 있지만,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해서 코가 커지는 장면은 단 한 장면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주머니에 금화가 있는데도 요정에게 거짓말하는 그 장면에서 피노키오는 코가 커져서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나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심하게 부끄러워 합니다. 그 한 장면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으니 피노키오 입장에서는 억울할 듯합니다. 오히려 책을 읽고 나면 피노키오는 거짓말쟁이라기보다 장난꾸러기로 보는 것이 더 정당할 듯합니다. 그런데 그 나이 때 소년이 말썽을 좀 피우는 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피노키오를 어떤 인물로 볼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그가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각각 다섯 가지씩 나열해 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가난한 제페토가 외투를 팔아서 겨우 마련한 책을 피노키오가 꼭두각시 인형극을 보기 위해 팔아버린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비난합니다. 또 절름발이 여우와 장님 고양이의 말을 믿고 금화를 땅에 묻은 행동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라며 피노키오의 순진함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내일이면 사람 아이가 될 수 있는데 학교를 가는 대신 친구들과 상어를 보러 바다로 간 것은 정말 못 말릴 호기심이라고 성토합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피노키오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어리숙할 정도로 순진하고 그저 호기심이 많은 장난꾸러기일 뿐입니다.
오히려 순진한 피노키오를 꾀여 떡갈나무에 목을 매달아 놓고 돈을 빼앗은 사기꾼들이나, 피노키오와 친구 '호롱불 심지' 로메오를 유혹해 장난감 나라로 데려가 당나귀로 변신시켜 팔아먹은 마부, 그리고 도둑을 당한 피해자인 피노키오를 오히려 감옥에 보낸 원숭이 판사 같은 어른들이 더 잘못된 것이 아닌지 반문합니다.
비록 피노키오는 미숙하고 실수 많지만 자기 대신 극장 주인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를레키오를 구해내기도 하고, 자신을 쫓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개 알리도르를 살려주기도 할 만큼 온정이 넘치는 아이입니다. 또한 포도 농장에서 동업을 제안하는 도둑 족제비의 거래를 뿌리칠 만큼 올바른 도덕심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노키오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에서 그는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악당은 더더욱 아니며, 단지 상식이 부족하고 순진한 장난꾸러기일 뿐이라는 판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피노키오의 코는 왜 커질까?
피노키오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짓말할 때마다 커지는 그의 코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왜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진다는 설정을 했을까요? 원작에는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과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자는 거짓말을 하면 금방 탄로가 나게 된다는 뜻이고, 후자는 한번 하게 되면 계속해서 하게 되는 거짓말의 속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왜 사람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지 함께 궁리해 보았습니다. 아프다고 엄마한테 거짓말해서 학원을 빠지고 친구들과 놀았던 일이나 동생의 과자를 빼앗아 먹기 위해 속였던 일, 시험을 망쳤지만 친구들 앞에서 잘 봤다고 거짓말했던 일, 엄마한테 혼나기 싫어 숙제를 하지 않고 다 했다고 거짓말했던 일 등 다양한 경험들이 나왔습니다. 그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곰곰히 따져 보면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혹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눈앞의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하게 되는 까닭을 알게 되면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횟수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들한테 만약 사람이 거짓말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해 보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되면 사기꾼 같은 범죄자가 없어질 것 같아서 좋다고 합니다. 또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항상 진실만 말하게 되어 세상이 더 평화롭게 될 것 같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좋기만 한 일일까요?
아이들한테 그렇게 되면 너희들이 엄마를 속이고 학원에 빠지거나 동생을 속여서 과자를 빼앗아 먹을 수 없게 될 거라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이성 친구 앞에서도 속마음을 숨길 수 없게 될 거라고 이죽거리며 언급합니다. 아이들은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며 문득 항상 진실만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프리드리히 니체나 움베르토 에코 같은 수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이 지닌 거짓말 능력이 우리 문명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역설하기도 합니다. 동물들과 달리 허구를 상상하고 거짓을 꾸며낼 수 있는 능력이 인간 관계를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부하 직원이 직장 상사에게 품고 있던 나쁜 속마음을 그대로 표출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만약 많이 친구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짝사랑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무방비로 노출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9)가 보여준 것처럼 오히려 거짓말은 삶의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하지는 않나요?
피노키오는 왜 진짜 아이가 되었을까?
장난꾸러기 피노키오가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었기 때문에 진짜 아이가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평범할 뿐더러 파시즘적 재해석일 뿐입니다. 저자 콜로니가 이 작품을 저술할 19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분열되어 있던 조국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 통일, 부흥운동)'가 한창이었고 저자 역시 이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 콜로니는 토스카나 지역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모험정신을 물려받았고, 이것은 미지의 세상에 대한 원초적 호기심과 자유의지로 들끓는 피노키오의 캐릭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등장한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피노키오의 자유정신을 묵살하고 '국민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강력한 규율과 훈육에 종속되어야 할 대상으로 재해석했습니다.(최우성, 동화경제사, 인물과 사상사) 오히려 피노키오의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은 오늘날 더욱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피노키오가 진짜 아이가 된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른들의 굳은 시선이 놓치고 말았을 사소한 것들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피노키오는 족제비가 함께 닭을 훔칠 것을 제안했을 때 누구의 도움 없이 잘못된 일이라 판단하고 거절합니다. 이미 피노키오는 옳고 그른 일을 스스로 판단할 만큼 분명한 도덕적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또 어부에게 죽게 되었을 때 자신이 목숨을 살려준 개 알리도르로부터 구원을 받은 피노키오는 '세상은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피노키오는 귀뚜라미로부터 아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합니다. 그래서 피노키오는 달팽이로부터 요정이 큰 병에 걸려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새 옷을 사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 전부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어 뱃속에서 제페토와 함께 탈출한 후 피노키오가 아빠를 위해 일을 하고 공부를 한 것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노키오는 '진짜 아이'가 되기 위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것도 제페토가 시켜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스스로 행한 것입니다. 즉 피노키오는 '자율적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아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점에 '피노키오'의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교육은 자율적 인간을 길러내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피노키오가 아무리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해도 끊임없이 용서를 해주고 보듬어 주었던 요정의 마음을 어른들이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착한 아이는 개구쟁이에 말썽꾸러기라도 언제나 희망이 있는 거야. 언제고 제자리로 돌아올 희망이 있는 거지."
'학년별 책읽기 > 5학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연호, 문화재로 배우는 근대 이야기, 주니어김영사 (7) | 2024.10.18 |
---|---|
J.M.바스콘셀로스/박동원 번역,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동녘 (6) | 2024.10.05 |
미하엘 엔데/한미희 번역, 모모, 비룡소(2) (0) | 2024.07.28 |
미하엘 엔데/한미희 번역, 모모, 비룡소(1) (0) | 2024.07.27 |
니콜라이 레스코프/이상훈 번역, 괴물 셀리반, 다림 (2) | 2024.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