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
반 고흐의 그림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1890)에서 마차는 화면 중앙에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화면 저 멀리 곧게 뻗은 철로 위로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기차는 마치 미래를 향해 가듯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려가고, 마차는 그에 역행하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마차와 기차라는 이동수단은 각각 전통과 근대를 상징합니다. 고흐는 기차에 의해 익숙한 풍경의 모습이 변화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던 듯합니다. 동일한 풍경이라도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위치에서 바라본 모습과 저 멀리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모습이 결코 동일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윌리엄 터너의 그림 '비, 증기, 속도'(1884)은 기차 자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빛과 안개의 강렬한 대비를 즐겨 그렸던 터너는 증기를 내뿜으며 다리를 건너는 기차를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증기와 안개로 뒤덮혀 정확한 형체를 식별할 수 없는 기차는 위압적이고 불안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양의 근대화를 추동한 기차는 근대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갱도에서 캐낸 석탄을 밖으로 끌어올리는 용도로 이용되었던 철로는 1830년 영국의 리버풀에서 맨체스터까지 철도가 완공되면서 본격적인 철도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철도 열풍은 이후 유럽 대륙과 미주 대륙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철도로 인해 '표준 시간'이 도입되며 전세계는 같은 리듬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역시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처럼 표준화된 세계 시간에 강제로 편입되어야 했던 슬픈 과거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차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곧 서양의 근대화 과정을 탐구하는 일이며 동시에 우리의 근대화 과정을 되짚어 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철도는 어떻게 공간을 살해했을까?
(가) "기관차는 부품들 모두가 각기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가장 작은 나사 하나도 있어야 할 곳에 있어서 다른 뭔가를 꼭 붙들고 있어. 모든 부품에 목적과 역할이 있고 그래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지. 이런 기관차를 궤도에 올려 물과 석탄을 공급하고, 한 사람이 작은 레버를 움직이면 큰 지렛대가 움직이기 시작해. 저렇게 크고 육중한데도 토끼처럼 재빠르게 움직이잖아."(음악가 드보르작)
(나) "무시무시한 전율, 결과를 예상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 이제 우리의 직관방식과 우리의 표상에 틀림없이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이다. 심지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도 흔들리게 되었다. 철도를 통해서 공간을 살해당했다."(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드보르작은 기차를 찬양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작은 나사 하나까지 제 위치에 있으면서 각각의 목적과 역할을 지닌 기관차의 구조는 그 자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 사람이 작은 레버를 움직여서 크고 육중한 기차를 토끼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효율성의 극치입니다. 음악가인 드보르작은 기차의 움직임을 마치 한 명의 지휘자가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서 화음을 만들어내는 음악 창조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시인 하이네는 1843년 파리에서 오를레앙으로 가는 기차 노선이 개통되었을 때 무시무시한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기차로 인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전통적 공간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은 빠른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우리의 시선에서 빠르게 벗어납니다. 길가에 선 나무들이나 거닐고 있는 사람들조차 형태가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사람의 눈이 차창 밖에 풍경 속에 있는 어떤 대상에도 주목하지 못하게 되어 일어난 사건입니다. 시인 하이네는 이러한 현상을 공간의 살해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기차는 공간뿐만 아니라 전통적 시간 개념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목적지까지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는 공간을 압축시켰을 뿐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고 도착해야만 했기 때문에 정확히 계산된 계량적 시간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차가 도입된 사회에서는 주관적이고 질적인 시간 대신 누구에게나 똑같이 계산된 기계적 시간을 살아야만 했습니다.(볼프강 쉬벨부쉬/박진희 번역, <철도 여행의 역사>, 궁리)
제도적 폭력의 서막
기차는 서양인들에게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세계와 결별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를 연 수단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철도는 근대의 축복이 아니라 제도적 폭력의 서막이었습니다. “1899년(광무3) 9월 18일 오전 9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 철마(鐵馬)가 길고 날카로운 일성을 토해냈다. 노량진과 제물포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인철도의 첫 기적소리였다. 이 낯선 문명의 소리는 이 땅에 근대의 새벽을 알리는 소리이면서 동시에 식민지의 어둠을 예고하는 불길한 소리이기도 했다."(박천홍,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산처럼) 근대 문명을 알리는 기적 소리는 곧 일제의 가혹한 폭력적 수탈이 시작됨을 알리는 비명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조선을 효율적으로 착취하고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병참로를 건설하기 위해 철로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철로의 건설 과정에서 조선의 민중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유리걸식해야 했고, 농민들은 물론 부녀자들이나 어린아이들까지 강제로 철도 건설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양귀(佯鬼)는 화륜선을 타고 오고 왜귀(倭鬼)는 철차를 타고 몰려든다”는 동요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는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 집에 아홉 집은 텅 비었고, 천릿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했다"고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철도는 조선의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는 촉매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남선은 <경부철도가>에서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우리 내외 외국인 같이 탔으나/내외 친소 다 같이 익혀 지내니/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라고 노래했습니다. 함께 열차칸에 앉아서 이동을 해야 하는 기술적 조건은 엄격한 신분의 장벽과 남녀를 유별하던 전통사회의 내외법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기차는 동시에 새로운 불평등을 등장시켰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재산에 따라 객차는 각기 다른 등급으로 구분되면서 신분 대신 경제력이라는 새로운 차별이 생겨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혁명을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의 진보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그는 혁명을 통해 풍요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그와 달리 세계 대전을 경험하며 진보가 파국으로 돌변한 세계를 경험한 발터 벤야민은 혁명을 폭주기관차를 멈추는 '비상브레이크'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차처럼 미래를 향해 무작정 질주해왔던 세계관은 수많은 희생자들과 환경 파괴를 일삼아 왔고, 이제 그러한 세계관을 멈춰 세우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마치 한국인의 DNA에 각인된 본성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속 시간에 늦는 한국인들의 시간 관념을 비난하는 '코리안 타임'이란 말이 통용되었던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은 사회 제도가 만든 산물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식민지를 경험했던 인도에서도 영국인들이 '인디안 타임'이란 말로 그들의 부정확한 시간 개념을 비아냥거렸던 것을 보면 엄격한 시간 의식은 제국주의의 유산일 것입니다. 그런데 기차가 형성한 엄격한 시간에 강제로 탑승하게 된 우리가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을 우리의 본성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뭔가 우습기도 하지만 서글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양의 근대가 그리고 일제가 만들어 놓은 기차 위에 올라탄 채 아직도 우리만의 고유한 시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뜻도 되기 때문입니다. 빨리 상대를 앞질러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최고로 여기는 사회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합니다.
사평역에서 우리가 두고 온 것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는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는 대기실의 스산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역사 밖으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각자의 고향으로 실어날라줄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차는 성공에 대한 욕망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모두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서울로 올라왔지만 결국 비루한 행색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기차를 기다려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다리는 '마지막 기차'는 그들의 좌절된 욕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대도시에서 '낯설음과 뼈아픔'을 겪어내며 내면 깊숙이 상처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침묵' 속에 빠져 있습니다. 너무나 큰 아픔과 슬픔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신처럼 상처 받은 사람들과 톱밥난로를 함께 쬐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들을 위로합니다. 내가 겪은 고통이 나의 것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일 때 그 고통은 참아낼 만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고향으로 내려갈 때는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이 되어야 한다고 피곤에 지치고 여려진 마음을 다잡습니다. 실제로 그런 선물꾸러미를 손에 들지는 못했어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이웃친지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넉넉한 마음으로 자신의 궁색함을 감추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쌓이는 '눈꽃의 화음' 또한 심란하기만 한 심사를 푸근히 위로해 줍니다. 싸륵싸륵 눈 내리는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낯설고 힘겨웠던 과거의 추억도 온통 희게 뒤덮혀 버립니다. 그러곤 또다시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떠나가는 밤열차에 올라 또 어딘가로 흘러가게 되겠지요.
학생들에게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읽고 짧은 단편소설을 쓰게 해 봅니다. 이 시를 읽고 크게 감동한 소설가 임철우는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학생들이 시를 읽고 각자의 정서와 느낌을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를 소설로 옮기다 보면 그들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사평역에 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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