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교육

영화 에이트 빌로우(5학년)

ddolappa72 2024. 7. 13. 18:56

 

버려진 개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영화 <에이트 빌로우>에 대하여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에이트 빌로우 eight below>는 남극에 버려진 8마리의 썰매개들이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175일만에 주인인 '제리'(폴 월커 분)과 재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56년 일본의 남극 탐험대에게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으며, 이 사건에 기초해 제작된 일본 영화 <남극이야기>(1983)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남극이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버려진 개들이 살아 남기 위해 겪게 되는 다양한 모험들은 그 자체로 흥미진지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이미 수업 시간에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읽은 상태여서 영화와 소설 간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시튼의 <시튼 동물기>나 키플링의 <정글북> 등은 고학년 아이들에게 많이 읽히는 동물 관련 책들입니다. 모험심과 독립심이 강해지는 시기이다 보니 낯선 환경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야성의 삶을 다룬 이런 책들보다 더 좋은 교재도 없는 듯 합니다. 


맥스의 성장 이야기

영화는 남극탐험대원 제리가 남극에 버려진 개들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와 남극의 극한 환경 속에 버려진 개들(마야, 올드잭, 쇼티, 듀이, 트루먼, 섀도우, 벅, 맥스)이 살아 남기 위해 벌이는 모험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대부분 남극에서 개들이 겪은 사건들이 주를 이룬 것을 보면 아무래도 영화의 본령은 개들의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들의 이야기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 영화는 주인공 맥스의 성장담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 마야에 비해 에너지는 넘치지만 미숙하고 실수 많던 막내견 맥스는 영화 말미에 부상 당한 마야를 대신해서 무리를 이끄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게 됩니다. 미성숙한 주인공이 다양한 모험과 시련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 구조는 아이들이 많이 읽는 성장소설의 구조와 일치합니다.

그래서 맥스를 중심으로 다른 개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지를 아이들에게 묻게 됩니다. 맥스의 실수로 갈매기 사냥에 실패해서 굶게 되었지만 쇼티가 자신의 먹이를 맥스에게 나눠 주었을 때 맥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또 부상당한 마야가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맥스에게 리더의 자리를 물려 주었을 때 맥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개들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의미를 유추해서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했을 법할 대사를 써 넣기 위해서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인물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책을 교재로 만들 때도 마찬가지지만 영화로 교재를 만들 때 아이들이 영화의 내용을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제나 교훈 같은 것을 미리 정해 놓고 이것을 확인하고 전달할 목적으로 교재를 제작하다 보면 자칫 따분하고 천편일률적인 결과만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별점을 아이들이 매기게 하고 그 까닭을 써 보도록 합니다. 또 글씨가 전혀 씌어 있지 않은 영화 포스터를 이용해 아이들 스스로 영화를 홍보하는 문구를 꾸며 보도록 합니다. 또 영어로 된 제목을 한글로 바꾼다면 무엇이 좋을 지 제안해 보도록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의 내용에 매몰되지 않고 영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법을 아이들 스스로 터득하도록 돕는 교재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 역시 아이들이 각자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과 동물 간의 우정? 협동을 통한 고난 극복? 시련을 통한 성숙? 아이들은 자신이 주제라고 생각한 것과 친구들이 생각한 주제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한 작품의 주제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비록 정답은 없지만 작품을 보다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주제가 '조금 더 좋은 주제'라는 사실 역시 점차 알게 됩니다.


맥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이 영화는 일종의 우화입니다. 의인화된 개들을 통해 리더십과 생존, 의리 등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솝의 우화를 영상으로 옮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개들이 황량한 남극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물으면 마야 리더를 중심으로 한 협동심, 이기적이지 않은 마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 살아 남겠다는 생존 본능 등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마야가 가장 막내인 맥스에게 리더의 자리를 물려준 것이 적합했는지 물어 보면, 다들 맥스가 지혜롭고 용감하며, 동료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내기 때문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보입니다. 이미 고학년 아이들은 동물들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표상하는 의미를 적절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영화에 대한 종합적 감상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맥스의 관점에서 사건들을 서술해 보도록 했습니다. 지금껏 인간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았다면 개의 관점에서 경험한 것을 바라보면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자신들만 남극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맥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더 이상 먹이를 주던 사람이 없어져 버려 2주간이나 굶주리다가 스스로 먹이를 사냥해서 잡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을 때 맥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우리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이유는 책이나 영화가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험의 확장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떠나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 봄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내가 동물이나 등장인물이 되었다가 다시 우리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넓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