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교육

시조 쓰기의 즐거움

ddolappa72 2024. 8. 23. 17:17

 

시조 쓰기의 즐거움

 

수업 시간에 추가로 동시를 읽고 시를 써오게 하곤 합니다. 은유와 상징이 등장하는 시만큼 아이들이 독해력을 기르는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없고, 또 시 쓰기만큼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특히 시조 쓰기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활동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동시와 달리 시조는 3장 6구 3음보의 형식으로 된 정형시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시와 달리 정형시는 글자수와 음보에 제한이 있고, 규칙에 맞춰 써야 하기 때문에 시를 쓸 때 고민할 게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제한 때문에 아이들의 생각과 상상력이 구속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어 선택이나 표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휘력과 사고 능력을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수업에서는 시조의 형식을 소개하고, 직접 시조를 읽게 한 후 아이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시 형식과 무엇이 다른지 찾아 보도록 합니다. 처음에는 정형화된 시 형식 때문에 시조 짓기를 힘들어 하지만 반복해서 써 보게 되면 차츰 시조의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재미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시조를 읽으며 역사 배우기

 

먼저 아이들이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소리를 내어 읽어 보도록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시조가 어떤 의도로 쓰여졌는지 유추해 보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추측한 내용이 맞는지 역사적 정황을 살펴 보고 재확인하게 됩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히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고저

(이방원의 '하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단심가')

 

 

이성계가 낙마로 부상당하자 그의 병문안을 온 정몽주에게 이방원은 '하여가'를 들려줍니다.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응답합니다. 이 둘 간의 시 문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말의 정치적 정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방원은 정몽주가 자신의 무리에 들어와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협조하기를 은밀하게 권합니다. 하지만 이성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고려라는 나라에 충직한 신하로 남고자 했던 정몽주는 '님 향한 일편단심'이란 말로 단호하게 이방원의 제안을 뿌리칩니다. 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정몽주의 시에서 '님'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방원이 조선의 3대 태조가 된 이후 자신의 손으로 제거한 정몽주를 고려 최고의 충신으로 띄웠다는 것입니다. 왕권을 장악한 태조는 정몽주 같은 충성스런 신하가 필요했고, 또 조선 건국을 반대했던 정몽주를 포용하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5학년 때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배우고, 6학년 때는 황진이, 이매창, 홍랑의 시조를 읽게 됩니다. 여류 시인들의 세련되고 섬세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시조는 아무래도 좀 더 경험이 쌓여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조 따라 쓰기

 

이것만 가지고는 주어진 시간 내에 아이들이 시조의 형식을 익히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저학년 아이들이 쉽게 쓴 시조를 읽게 한 후 지우개나 연필 같은 주변의 사물들에 대한 시조를 써 보게 합니다. 우리의 전통시를 아이들이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학교의 2학년 학생들이 쓴 시조는 형식은 지키면서도 재기발랄합니다.

 

 

축구공이 멋지게 골대로 걸어간다

둥글둥글 저절로 골대로 걸어간다

우르르 달려 나간다 우리팀이 이겼다

(강연우의 '축구공')

 

 

새벽부터 라면들이 안녕, 안녕 인사해

맛있게 먹고 싶지 뜨겁게 물부터 붓기

엄마가 보지 못하게 흔적부터 없애자

(강지운의 '새벽 라면')

 

 

조상들의 시조를 읽고 잔뜩 긴장하던 아이들도 2학년 동생들이 쓴 시조를 읽고 킥킥거리며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조를 쓴 뒤 다른 친구들이 쓴 시조를 읽으며 시조를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감을 잡기 시작합니다.

 

 

사진 속 풍경 보고 시조 쓰기

 

수업의 마지막은 사진 속 풍경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시조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과 사진 속 풍경을 살펴 봅니다. 보현산 정상에서 찍은 가을 풍경에는 억새가 누런 머리칼을 흩날리며 살랑거립니다. 처음에는 갈대라고 알던 아이들도 갈대는 강가나 습지처럼 물가에 서식하고, 그와 비슷한 억새는 산이나 들판 같은 건조한 곳에 서식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사진 속 구름의 이름이 무엇인지, 산 너머에는 무엇이 보이는지를 꼼꼼하게 살펴 보게 합니다. 그런 다음 본인들이 상 정상에 서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그런 풍경들을 보게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 지 상상해보도록 합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시조들이 탄생했습니다.

 

 

억새가 비단같은 머릿결 휘날리고

솜사탕 닮은듯한 뭉게구름 둥둥떴고

저멀리 파도 치는 듯 바닷물이 푸르네

 

 

정상에 올라온 나 억새가 휘날린다

새하얀 구름들이 뭉게뭉게 두리둥실

산들이 파도들처럼 첨벙첨벙 뛰노네

 

 

바닷물 퍼담아서 뿌렸던 하늘에는

우유빛 솜사탕이 뭉게뭉게 떠다니고

산들의 황금깃발이 풀럭풀럭 거린다

 

 

산높이 올라서니 산들이 물결치네

내맘도 요동치네 살다보면 힘들지만

푸르른 산과 바다는 내 맘의 한 줄기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