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교육

(융합수업) 사진으로 시쓰기, 시로 사진 찍기_디카시

ddolappa72 2025. 7. 5. 15:23

어떻게 하면 시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어른들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아이들은 유독 시라는 장르를 기피하고 꺼려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가장 일차적인 원인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잘못된 시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녔던 시절과 다름없이 여전히 중요 구절에 밑줄 긋고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뜻 풀이한 것을 받아적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건만 왜 시 교육은 수 십 년 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가 시험 문제로 출제되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시를 배우고 공부하니 시가 재미없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시인조차도 자신이 쓴 시에 대해 출제된 문제를 맞추지 못했다는 '웃픈' 현실이 시에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시를 어렵다고 느끼게 만드는 원인은 시를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한 장르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는 뭔가 일상의 언어와는 다른 말로 써야 할 것 같고, 주제나 메시지 역시 심오하고 비범해야 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흥얼거리는 가요의 노랫말이나 기발하다고 감탄한 광고 카피도 시의 친척들입니다. 시의 언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어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시의 주제 역시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보편화하는 과정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과 일상에서 사용된 말이 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시가 찾아오는 순간을 느끼곤 합니다. 붉게 물든 장엄한 저녁놀을 바라보며 덧없는 상념에 젖어들게 될 때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시심이 슬며시 깨어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요즘은 그런 순간 시를 쓰는 대신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습니다. 말보다 이미지에 더 친숙해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찍힌 사진 이미지는 일종의 날 것의 시가 아닐까요? 사진은 사실 무엇인가 아름답다고 느낀 그 순간의 심정을 증명하는 기록물이 아닐까요?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한 당시의 심정을 글자로 옮기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요?

우리가 멋지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찍은 사진에 몇 줄 글을 써서 개인 SNS에 올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마 곧바로 친구들이 찾아와 사진이나 글에 대해 댓글을 남기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친구들은 자신들도 알고 있는 친숙한 장소나 익숙한 사물이 색다르게 포착된 것에 대해 놀라워 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과 독자가 실시간으로 만나 이루어지는 이런 쌍방향 소통은 기존의 문학 작품의 수용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한 미디어 환경을 적극 반영한 문학 장르가 새롭게 출현할 가능성이 높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디카시입니다. 
 

디카시의 창시자 이상옥 시인



디카시란 무엇인가

디카시는 '디지털 카메라'와 '시'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순간 포착해서 그 영상을 시로 표현한 시를 뜻합니다. 이상옥 시인이 고성 지역을 중심으로 일으킨 지역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디카시는 이후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공론화되어 현재는 새로운 시의 장르로 정착되었습니다.

시와 사진의 결합이란 점에서 디카시는 포토포엠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포토포엠은 기존 시에 어울리는 사진을 덧붙여서 시를 효과적으로 감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디카시와 구분됩니다. 포토포엠에서 사진은 시를 돋보이게 만드는 부수적이고 장식적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디카시에서 사진은 시 창작의 출발점으로, 언어화되기 이전의 날 것 그대로의 시라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마주친 우연한 풍경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을 느낀 순간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그렇게 포착된 순간을 언어로 다시 형상화하기 때문입니다.

디카시가 기존의 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과 같은 SNS에 올리고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쌍방향 소통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책이란 매체에서와 달리 창작자는 자신의 시를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창작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습니다. 

나아가 디카시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시적 순간을 사진과 글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예술화, 예술의 일상화를 주도하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디카시를 쓰기 위해서는 일상의 익숙한 사물들과 풍경을 예술가의 눈으로 낯설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진과 시를 통해 일상을 새롭게 포착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경험을 하면서 디카시 창작자는 예술이 자신의 삶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자연스레 예술 일반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디카시를 만났을 때

우선 이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나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즐겨 찾는 분식점, 편의점, 놀이터, 각종 학원 등 모든 것이 그 대상입니다. 아이들이 공유하는 대상을 선택해 시를 써 보게 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서로가 얼마나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지각하는지를 동시에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 전에 미리 아이들에게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시로 쓸 만한 것을 사진으로 찍어오라고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시의 대상이라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는 학교 앞 횡단보도 사진을 보고 시를 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시를 다 쓴 뒤 친구들과 돌려 읽고 댓글을 달아보도록 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신호등

집 갈 땐 항상 초록불인데
학교 갈 땐 항상 빨간불이다.
저 신호등이 날 싫어하나 보네.

댓글: 신호등은 널 싫어하지 않는단다. / 집 갈 때 초록불이면 개꿀 아님? / 니가 빨리 나오든가요.

(나) 마법의 색깔

나는 유일한 마법의 색
세상의 모든 차를 멈춰 세우고,
모든 사람을 멈추게 하고,
심지어 버스도 멈추는 나는
마법의 신호등

댓글: 참 재밌게 사시네요. / 전생에 마법사? 

(다) 학교 앞 횡단보도

매일매일
6년 동안 봐야 하는 풍경
6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

댓글: 공감된다.

(라) 상자

안에 무엇이 들은지 몰라.
즐거운 것일 수도,
슬픈 것일 수도.
슬픈 것이어도 괜찮아.
안에 무엇이 있던지,
학교라는 상자는 나를
성장시키는 거니까.

댓글: 학교라는 곳이 때로는 무섭고 즐거울 때도 있지. / 나도 그래. 나는 화날 때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매우 즐겁고 행복해.

(마) 맞나?

횡단보도 앞 친구 같아서
손 흔들었더니 모르는 애다.

댓글: 겪었던 일 같아서 재미있다.

아이들은 동일한 사진을 보고 각기 다른 대상을 선택해서 시를 썼습니다. 신호등을 주목한 아이도 있었고, 횡단보도나 길 건너편에 서 있는 학생을 선택하기도 했고, 학교 그 자체를 시의 소재로 쓰기도 했습니다. 각자가 선택한 대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개성을 담아 표현한 점이 재미있습니다. 같은 신호등에 대해 시를 쓰더라도 사람과 차를 통제할 수 있는 신호등의 전능한 능력를 마법사 같다고 표현하거나, 신호등 때문에 자신이 겪은 불운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또 6학년이다 보니 곧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고, 학교를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많았지만 자신을 성장시킨 장소로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쓴 시를 읽고 직접 댓글을 남기며 공감하기도 했고, 장난스런 댓글을 달아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자신들이 쓴 시를 친구들과 공유하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개성을 존중하고, 시를 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를 쓰는 이나 시를 읽는 사람 모두 시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

아이들이 시를 쓰기 위해 제출한 사진은 유독 하늘을 찍은 것이 많았습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여전히 신비롭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특히 붉게 물든 노을은 아이들에게 일상을 넘어선 장엄한 아름다움을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상에서 경험하게 되는 그런 아름다운 순간들을 사진으로 저장하고, 글로 표현하고, 친구들과 공유하게 된다면 아이들의 마음 역시 아름다운 것들로 충만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바) 보랏빛 시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노을빛과 하늘빛이 섞여
보라빛이 되는 이 시간.
손톱 같은 달이 반짝 빛나는 시간.
(6학년 이연제)


(사) 노을

집에 가다 보면
가끔 보이는 노을

오랜 만에 봤는데
금방 사라져버렸다.
(6학년 어지우)


(아) 감싸주는 나무

한여름 땡볕에서 놀아도
소나무들에게 가면
나를 감싸주며
시원하게 해주네.
(6학년 박종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