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중2

메리 셸리/오숙은 번역, 프랑켄슈타인, 열린책들

ddolappa72 2024. 9. 28. 14:00

 

<프랑켄슈타인>은 어떻게 탄생했나

1816년은 유럽의 역사에서 '여름이 없었던 해(Year without a summer)'라고 불립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이상 저온, 폭풍우, 장마, 홍수 등을 겪었습니다. 연초부터 계속된 저온현상으로 농작물은 극심한 타격을 입었고 대규모 기근으로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야 했습니다. 그 원인은 탐보라 화산 폭발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며 분출한 가스와 먼지가 햇빛을 차단해서 그 당시 지구는 약 3년 가량 이상저온 현상에 시달려야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19살의 메리는 여동생 클레어,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함께 스위스로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클레어의 제안으로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을 방문하게 됩니다. 바이런의 친구이자 의사이자 작가 지망생이었던 존 폴리도리도 그 무리에 합류해서 함께 바이런의 별장에 모였습니다. 계속되는 폭우와 우중충한 날씨에 따분해 하던 다섯 사람은 바이런의 제안으로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쓰게 되었습니다. 바이런은 흡혈귀를 소재로 하는 단편을 썼고, 폴리돌리는 최초의 뱀파이어 소설을 썼습니다. 메리가 이 시기 떠올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이 바로 <프랑켄슈타인>(1818)입니다. 소설의 암울한 분위기는 아마도 당시 이상기후로 유발된 절망적인 사회분위기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선장 월턴과 빅터의 기묘한 우정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사 구조와 인물 간의 관계 등을 살펴야 합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선장 월턴이 사빌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1)
(나) 빅터의 이야기(1)
(다) 괴물의이야기
(라) 빅터의 이야기(2)
(마) 선장 월턴이 사빌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2)

소설은 북극을 항해하던 선장 월턴이 괴물을 쫓고 있던 빅터와의 기묘한 만남을 자신의 누이인 사빌 부인에게 편지로 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액자 소설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빅터의 시점과 괴물의 시점에서 쓰여진 각각의 이야기들이 액자 안에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괴물의 이야기가 소설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괴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소설을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선장 월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북극을 탐험할 목적으로 항해하던 중 조난자로 보이는 빅터를 만나게 됩니다. 선장은 지구의 오지를 탐사해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자력의 비밀을 알아내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인류에게 적대적인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누리고 전달하기 위해 내가 찾는 지식을 얻기만 한다면 한 인간의 생사는 사소한 대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과학의 힘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선장이 빅터를 만나자마자 그토록 갈망하던 친구를 만났다고 여기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빅터 역시 선장 못지 않게 과학 발전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빅터는 '창조의 가장 은밀한 신비'인 생명을 철저하게 연구해서 마침내 '새로운 종의 창조자'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초판 제목이 '프랑켄슈타인, 또는 근대의 프로메테우스'였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듯이 빅터는 근대 과학기술을 이용해 시체로부터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피조물을 위해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갖다 줌으로써 인간은 찬란한 문명을 꽃 피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코카서스 산 절벽에 쇠사슬로 묶여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에게 날마다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빅터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사랑하는 가족과 아내를 잃고 괴물에게 복수하기 위해 쫓아다녀야만 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 간의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요?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피조물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반면에 빅터는 자신의 손으로 괴물을 창조했지만 그 흉칙한 모습에 놀라 그대로 버려두고 도망을 치게 됩니다. 작가는 이러한 대조를 통해 신은 인간과 자연을 탄생시켰지만, 신을 모방해 인간이 창조해낸 인공물은 추악한 괴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신은 자신의 피조물을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인간 과학자는 자신의 창조물에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빅터로부터 자신이 창조해낸 괴물 이야기를 들은 월터 선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면 한 인간의 생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믿음을 지닌 그는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물인 빅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근대 과학이 보여준 오만함과 무책임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보리스 칼로프가 괴물로 연기한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


괴물은 왜 이름이 없었을까

흔히 괴물의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고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박사의 이름이고 정작 괴물은 이름이 없습니다. 또 영화에서 괴물은 커다란 덩치와 범죄자의 뇌를 이식한 탓에 살인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지능도 떨어진 것으로 묘사되지만, 원작인 소설 속 괴물은 독학으로 학문을 섭렵할 정도로 교양 있고 지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다만 시체들을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생긴 흉칙스런 외모 때문에 사회에서 끊임없이 배척당할 뿐입니다. 

소설에서 괴물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주변 환경으로 인해 점차 괴물로 변해갑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아난 무책임한 아버지, 아무리 친절을 배풀고 심지어 목숨을 구해줘도, 외모 때문에 자신을 냉대하고 차별하는 사람들 때문에 괴물은 점점 살인을 서슴치 않는 괴물로 변해갑니다. 작가 메리 셸리는 왜 이런 괴물을 탄생시켰던 것일까요?

우선 셸리의 아버지는 개인주의를 강조하여 아나키즘의 근간을 마련한 윌리엄 골드윈이었고, 어머니는 저명한 페미니스트였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서적'으로 평가되는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에서, 남녀는 똑같이 이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여성이 열등해 보이는 이유는 단지 교육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기사, 1818년 21세 여성의 손에서 탄생한 최초의 SF) 비록 셸리의 어머니는 그녀를 출산한 후 11일만에 산후 폐혈증으로 사망하고 말았지만 셸리는 어머니가 남긴 지적 유산을 독서를 통해 습득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흉칙한 외모 때문에 인간 사회로부터 배척당하는 괴물의 모습에는 당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차별이 반영되어 있다고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당시 여성 작가들이 중성적이거나 남성적인 필명으로 출판하는 일은 흔했고, 셸리 역시 <프랑켄슈타인>의 초판을 익명으로 발표했습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이름은 불릴 수 없거나 지워지거나 가명 뒤에 숨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여성은 이름이 없는 존재, 즉 괴물과 동격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괴물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가 사회로부터 억압되고 차별받는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우선 괴물은 무생물인 시체 조각으로 만들었지만 생명체인 것처럼 활동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존재입니다. 기존 사회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존재는 괴물이 됩니다. 서적 출판처럼 남성의 전유물인 지적인 활동을 여성이 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 활동을 하는 여성 역시 괴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괴물의 이름 없음은 역으로 괴물을 배척한 사회를 비판하는 지렛대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무책임하게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고 도망간 아버지를 괴물은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빅터가 괴물을 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빅터가 죄책감과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 중 누가 더 괴물인가요?

박사를 찾아간 괴물은 자신과 감정을 나누며 함께 살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박사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괴물은 그의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게 됩니다. 만약 박사과 괴물의 요구에 따라 여자 괴물을 창조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괴물은 여자 괴물과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여자 괴물은 남자 괴물의 이기심 때문에 탄생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그를 저주하지 않았을까요? 또 괴물이 흉칙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배척받는다면, 박사가 그의 외모를 꽃미남으로 고쳐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자, 이제 마지막 물음에 대답할 시간입니다. 괴물을 창조했으나 무책임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흉칙한 외모의 괴물 중 누가 더 괴물이라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