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교육

고흐의 방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초2)

ddolappa72 2024. 7. 7. 17:30

"미래의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라슬로 모홀리-나지)

우리나라에서는 미술이나 음악을 특별히 재능있는 아이들만 하는 것으로 여기거나 대학 입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교과목으로 하찮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관련 수업들도 유명한 작가와 작품을 암기하거나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파 등 사조를 가르치는 게 전부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언론이나 광고에서는 21세기에 필요로 하는 인재를 르네상스형 인간이라 지목하고 앞으로는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르네상스형 인재의 대표인 다빈치는 미술, 건축,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모나리자' 같은 작품을 남긴 화가로서 더 많이 알려졌다는 사실은 왜 외면되고 있는 지 의문입니다. 또한 아이폰을 개발해서 21세기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스티브 잡스 역시 대학에서의 서체(캘리그라프) 수업이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했음에도 왜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예술 교육은 소수의 엘리트나 대학 진학에 도움되지 않는 영역으로 폄하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회자되고 있는 '리터러시 능력'에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능력이 포함될까요, 포함되지 않을까요? 흔히 '리터러시 능력'을 책을 읽고 독해하는 능력으로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이 개념은 그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포괄합니다. '리터러시(Literacy)'는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텍스트를 읽어 내고,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타인과 소통하는 활동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때 읽고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텍스트는 문자로 된 책에 국한되지 않고, 소리로 된 음악이나 형태나 색채로 이루어진 그림, 심지어 춤이나 표정 같은 것들조차 포함됩니다. 

따라서 미술 교육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기르고, 리터러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반드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리터러시로서 미술 수업'입니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관련 분야 전문가 선생님들의 영역이지만 그림을 이용해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소위 '논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저와 같은 미술 비전문가도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고흐의 방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1889년 프랑스 남부 아를에 머물며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아를의 침실'은 흔히 '고흐의 방'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로 된 침대와 의자는 버터 같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레몬빛이 감도는 침대 시트와 베개로 채워진 실내는 그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잠과 휴식을 취하고 싶은 고흐의 열망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이 그림에 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함께 그림을 감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간혹 이 그림을 그린 화가와 작품명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들이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박식한 아이들은 그런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 채 작품을 온전히 감상한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림에서 보이는 것들의 이름을 불러 보게 합니다. 침대, 의자, 창문, 액자, 베개, 거울, 수건 등의 단어들이 나옵니다. 그런 다음 보이는 색채의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합니다. 파란색, 연두색, 하늘색, 노란색, 초록색 등이 나옵니다. 간혹 섬세한 감각을 지닌 아이들은 그림 속의 색깔과 자신이 말한 색깔이 다른데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같은 파란색이라도 파랗다, 새파랗다, 퍼렇다, 푸르스름하다, 푸르뎅뎅하다가 같은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 '맑은 여름날 하늘처럼 파랗다', '수영장 물빛처럼 파랗다'와 같은 표현법을 알려주고 정확히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아이들이 사물과 색채에 대한 어휘력을 늘릴 수 있고, 정확한 표현력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

그런 다음 이 방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지 상상해 보도록 합니다. 나무로 된 가구가 많은 걸 보니 이 방 주인은 목수임에 틀림없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며칠 전 자기 집에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데 그림 속 집안의 색감이 비슷하다며 방 주인이 인테리어 업자 같다고 말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방이 자기 방처럼 지저분할 걸 보니 청소를 잘 안 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 아이도 있었고, 이정도면 깨끗한 편이 아니냐고 두둔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근거를 갖고 방의 주인을 유추하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방의 모습을 보고 거주자의 직업이나 성격, 심지어 성별까지 유추해 나갔습니다. 그것이 실제와 얼마나 부합하는 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지식의 노예로 만들어서 침묵하도록 만드는 것보다는 다채로운 오답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창문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있을까?

그림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문이 있고, 화면 정면에는 길가로 난 커다란 창문이 있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문을 열면 어떤 공간이 나올까요? 그리고 창문을 열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책 읽기가 쓰여 있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일이라면, 그림 읽기는 화가가 미처 그리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을 읽어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창문 밖의 풍경을 상상해서 그려 보라고 합니다. 나무와 꽃이 가득 피어난 정원이나 숲을 그린 아이도 있었고, 커다란 빌딩숲 사이로 수많은 차들와 사람들이 오가는 큰길을 그린 아이도 있었습니다. 물론 개구쟁이들은 거대한 로보트나 공룡들이 활보하거나 싸우는 모습을 그리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그렸니?' 하고 물으면 자기들은 창문 밖에 이런 것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상상했다면 그것 역시 존중해 주려고 합니다.


그림은 훌륭한 리터러시 교재입니다

최종적으로 아이들에게 그림 속 방을 소개하는 글을 쓰게 하고 수업을 마무리합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다양한 어휘들,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종합되어 제법 읽을 만한 글을 써냅니다. 중요한 점은 한 장의 그림이라도 아이들이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그림과 관련된 정보를 주입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식의 미술 교육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림을 보고 시나 소설을 쓰게 하거나,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모습을 그려 보게 하고, 소설을 읽고 그림으로 표현해 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또한 회화 작품과 역사를 연결시켜 진행된 수업도 종종 있습니다. 왜 역사를 책을 통해서만 배워야 하나요? 영화, 미술 작품, 음악 등을 통해서도 역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영역들을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사고능력이나 창의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외국에 여행을 가더라도 꼭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들러 작품을 감상할 줄 아는 아이를 길러내는 것이 저의 교육적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