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느의 삶은 왜 엉망진창이 되었나
소설이나 동화, 심지어 영화나 연극 같은 서사 장르를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 중 하나는 주인공이 직면한 주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초반에 핵심 갈등을 제시하고,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사건들이 전개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제시될 때 독자는 주인공에게 쉽게 감정이입하게 되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야기 초반에 제시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했을 경우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조차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 프린느의 삶은 동생 토마스가 세 살이 되면서부터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프린느에게 저녁 목욕 시간은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인어가 되는 상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하루 중에서 최고로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발가벗은 채 두 팔을 쫙 벌린 토실토실한 남동생 토마스를 프린느가 기분 좋게 목욕하고 있는 거품 욕조에다 불쑥 집어넣게 되면서 프린느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토마스는 거치적거리는 별별 장난감으로 프린느를 불편하게 했고, 초강력 물총으로 배나 엉덩이를 마구 쏘아댔고, 심지어 욕조에 마구 쉬를 해대기까지 했습니다. 진짜 악몽은 토마스가 누나랑 목욕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녁 목욕 시간은 프린느에게 동생의 투정을 다 받아 줘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프린느는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나
마침내 프린느가 동생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토마스가 수챗구멍을 막고 있떤 마개를 잡아 당겨 빼는 바람에 애지중지하던 초록색 플라스틱 악어 장난감이 수챗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고것 참 쌤통이다!'며 고소해하던 프린느는 텔레비전 화면 속 악어의 매력적인 눈을 넋 놓고 보다가 문득 좋은 수가 떠올랐습니다.
다음 날 프린느는 욕조에서 폭군처럼 구는 동생을 꾹꾹 참아가며 수챗구멍 속에 살고 있는 무시무시한 악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누나의 실감나는 이야기에 동생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욕조 물이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프린느의 이야기가 끝나고 때마침 엄마가 수건을 들고 욕실에 들어오자 동생은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요조 밖으로 뛰쳐나가 엄마의 팔에 매달렸습니다. 그 뒤부터 토마스는 점점 목욕을 하기 싫어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린느의 작전이 대성공한 셈이지요.
이 동화의 매력은 주인공 프린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고 엄마한테 고자질하지도 않았고 그 대신 거짓말을 선택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세 살배기 동생은 아직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하수도에 악어가 산다는 누나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목욕을 무서워 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린느는 동생의 아이다운 순진함을 정확히 공략한 것입니다. 그러나 프린느는 올바르지 못한 문제 해결은 언젠가 자신에게 더 큰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했습니다.
프린느는 왜 하수도로 내려갔을까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엄마와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집에 돌아온 프린느는 평소와 다른 집안 분위기에 잔뜩 긴장했습니다. 욕조 안의 물은 다 빠지지 않은 채였고, 욕조와 선반 사이에 있어야 할 빨래 바구니는 바닥에 뒤집어져 빨랫감이 나뒹굴고 있었고, 무엇보다 수도꼭지 위 타일에는 피 묻은 작은 손자국이 찍혀 있었습니다. 엄마와 토마스를 아무리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순간 과연 프린느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무엇인가 단단히 결심한 프린느는 한 손엔 동생의 초강력 물총을, 다른 손엔 부엌에서 찾은 손전등을 들고서 하수도 뚜경을 힘껏 열어젖히고는 그 안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습니다. 마치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지만 프린느는 동생 토마스를 삼킨 악어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동화의 반전입니다. 동생을 골탕먹이기 위해 자신이 한 거짓말을 프린느가 '진짜'라고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프린느는 왜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었던 것일까요? 심상치 않은 집안 상황에 프린느의 이성이 마비되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프린느 역시 어린 소녀에 불과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던 것일까요? 한가지 분명한 점은 바로 이 순간 프린느는 평소 자신의 평온한 삶의 파괴하는 골칫덩이 정도로 여겼던 동생에 대해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프린느가 동생 토마스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진실'입니다. 프린느의 토마스에 대한 사랑은 끔찍한 지옥으로 내려가서라도 동생을 삼킨 수챗구멍 속 악어에게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동화는 겉으로는 누나와 동생 간의 갈등과 대립을 다루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누나가 동생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넘어 자신의 마음 밑바탕에 놓여 있던 동생에 대한 깊은 사랑을 발견하게 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형제란 매일 투닥거리로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전자를 공유한 피붙이로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프린느도 조금은 깨닫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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