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3학년

필리파 피어스/햇살과나무꾼 번역, 외딴집 외딴 다락방에서, 논장

ddolappa72 2025. 12. 6. 16:28

 

 

책읽기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비극의 목적이 연민과 공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부당하게 불행을 겪은 사람이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을 보면서 '연민(eleos)'을 느끼게 되고, 그와 같은 불행과 고통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할 때 '공포(phobos)'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이러한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관객은 긴장감이 해소되며 감정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katharsis)'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극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독서 과정에 적용시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우리가 독서를 통해 '즐거움', 다시 말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 속 인물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공감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과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감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공간 능력, 도덕적 감수성, 올곧은 정의감, 풍부한 상상력 등은 성공적 독서를 위해 요청되는 것들이지만 동시에 책 읽기를 통해 길러질 수 있는 품성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 속 상황과 인물에 대해 공감하고 자신의 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물들이 속한 낯선 세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도록 해야 합니다. 허구의 세계에 적용되고 있는 질서와 규칙을 이해하고 있어야 그 세계 안으로 효과적으로 빠져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허구적 인물들이 속한 가상의 세계와 아이들이 속한 현실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두 세계에 모두 적용되는 보편적 경험을 아이들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인물들이 겪는 사건과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책 안의 세계를 보다 가깝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락방은 어떤 공간인가

여행을 가거나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설친 경험은 다들 있을 것입니다. 평소와 다른 낯선 환경은 무방비 상태인 수면에 빠져들 만큼 안전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하기에 주변을 경계하는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 에마 역시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 이모할머니 댁에서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모할머니는 에마에게 이모 애니가 어린 시절 사용했던 다락방을 주었습니다. 에마는 작은 다락방을 처음 본 순간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작지만 아늑했고, 여자 아이를 위해 꾸며 놓은 방이 자신에게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남동생 조는 아래층에 있는 간이침대를 배정받은 반면 자신에게는 온전한 방 한 칸이 주어져서 그 기쁨은 더 컸습니다. 하지만 에마의 기쁨과 설렘은 곧 공포와 두려움으로 바뀌게 되는데, 에마가 다락방에서 혼자 잠을 자면서 이상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락방에 대해 에마가 가지고 있는 매혹과 공포라는 이중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락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집의 꼭대기이자 지붕 바로 밑에 위치한 다락방은 천장과 지붕 사이의 공간을 방으로 사용한 곳입니다. 지붕의 경사면이 방의 천장이 되는 구조라 비좁고 협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주로 잡동사니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곤 합니다. 문학에서 다락방은 흔히 불우한 처지에 있는 주인공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이거나,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모이던 아지트로 활용되며 모험심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미지로 활용됩니다. 

이 동화에서 다락방은 에마가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는 모험의 장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인 'The Ghost in Annie's Room'은 에마가 애니 이모의 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공포의 실체인 '유령'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어 제목은 에마가 그러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상황인 '외딴'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즉 에마의 초현실적 경험은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는 낯선 장소와 다락방이라는 낯선 공간이 함께 빚어낸 '낯섦'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동화에서 중요한 것은 어린 소녀가 마주하게 된 '유령'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그러한 '낯섦'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에마는 왜 두려워 했을까

한밤중에 에마는 눈을 번쩍 떠야만 했습니다. 누군가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를 잠결에 들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둠 속에서 누군가 에마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던 에마는 용기를 내어 창문가로 다가갔습니다. 에마의 짐작대로 바람 때문에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유리창을 철썩철썩 부집히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에마는 잠을 자려고 다락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하얀 옷을 입은 흐릿한 형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만큼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에마는 그 하얀 형체를 막으려고 무심코 팔을 쳐들었는데, 놀랍게도 그 하얀 형체도 에마처럼 팔을 쳐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하얀 형체는 화장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사흘째 되던 날 에마는 잠결에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듣다가,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 퍼뜩 깨고 말았습니다. 방 한가운데 누군가 우두커니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마가 비명을 지르고 난 후 정체를 확인을 해보니 비가 들이칠까 봐 창문을 닫아 주려 왔던 엄마였습니다.

동화는 에마의 시선에서 공포스런 순간을 서술해서 긴장감을 극도로 고양시킨 뒤 에마 스스로 그것의 실체를 밝혀서 긴장을 이완시키는 서술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쓰기 방식을 통해 에마가 경험하는 공포의 실체가 사실은 근거없는 것이며 오롯이 에마의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어린 주인공이 스스로 공포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곧 '성장'의 과정임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업에서는 에마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도 살펴 보았습니다. 우선 남동생 조가 에마에게 다락방에 유령이 나온다고 말했던 사실이 에마의 마음 속에 의구심과 두려움을 낳게 된 원인으로 지적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아마 조는 자신은 간이침대에서 자는 반면 누나는 혼자서 독방을 차지하게 된 것이 못마땅해서 누나를 골탕먹일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모할머니가 딸인 애미 이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한숨을 쉰 것 역시 에마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에마는 할머니가 한숨을 쉰 이유가 애니 이모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오인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애니 이모는 결혼을 해서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과 뉴질랜드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모할머니는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딸이 보고 싶어 한숨을 쉬었던 것입니다.

 



고양이는 진짜였을까, 아니면 유령이었을까

모든 오해가 풀린 에마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어젯밤 침대에서 본 얼굴이 하얀 검은 고양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이모할머니 집에는 고양이가 없고, 애니 이모가 어렸을 적 키웠던 고양이가 에마가 본 고양이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마가 만난 고양이는 진짜 살아있는 고양이였을까요, 아니면 유령 고양이였을까요?

이런 식의 열린 결말은 어린 독자들에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아이들은 그 고양이가 유령일 리 없다고 주장하는 쪽과 유령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생각한 근거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에마가 본 고양이가 애니 이모가 어린 시절 키웠던 것과 닮은 이유는 그것이 이모가 키웠던 고양이의 후손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엄마의 말처럼 이모할머니는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않고, 아무리 후손이라도 똑같이 닮은 고양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유령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논쟁이 격해질수록 확인할 수 있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이들은 이미 동화의 세계 속 깊이 빠져들었고, 어느새 그 세계 속 인물이 되어 자신 앞에 제기된 낯선 현상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마가 만났던 그 고양이의 실체를 밝히려는 아이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