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옛 그림과 친해질 수 있을까
유년시절은 예술적 안목을 키우고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시기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축적된 예술적 감수성은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채색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 감상 수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의도도 적합한 방법과 전략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미술 전문가들이나 도슨트들의 해설을 아무리 많이 듣는다고 해서 저절로 예술적 감수성이 키워지는 것도 아니며, 더더욱 어린 아이들한테 작품을 둘러싼 전문적 지식을 나열해 봐야 그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긴커녕 오히려 무관심과 냉담한 태도로 외면받기 십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왕이면 서양화가 아니라 한국의 그림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또 그들의 눈 높이 맞게 감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선택한 교재가 이 책입니다. 원래 미술을 공부하다가 시로 전향한 시인 신현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그림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동시를 덧붙여서 아이들이 어렵게 느끼는 조선의 회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현재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가는 정중(靜仲) 이암(1507~1566)의 '모견도' 옆에 '나도 강아지면 좋겠어'라는 시를 써 놓았습니다.

나도 강아지면 좋겠어
숙제도 시험도 없이
아무 걱정도 없이
따사로운 엄마 등에 폴짝 뛰어들어
복슬복슬한 털에 묻혀
잠만 자고 얼마나 좋을까?
보슬보슬 비 내리듯
부슬부슬 오는 잠 속에
파묻히고 싶어
(신현림의 '나도 강아지면 좋겠어' 전문)
화가 이암은 붉은 목줄을 맨 기품있는 어미견이 배불리 젖을 먹고 자신의 품에서 잠든 새끼들을 자애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광경을 그렸습니다. 시인은 이 그림에서 새끼들에 주목해 공부나 숙제를 잊고 한껏 따사로운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서술했습니다. 아마 어미견의 입장에서 시를 썼더라면 아이들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간소화하고 그 대신 시를 통해 작품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기
긍재(兢齋) 김득신(1754~1822)의 ‘야묘도추'는 나른한 봄날 따뜻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도둑고양이 한 마리로 인해 깨지는 순간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포착해낸 작품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아이들이 그림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림 속 사건이 일어난 계절은 무엇이고, 하루 중 언제일까? 도대체 그림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들고양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남자와 그의 아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런 과정을 거쳐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결과물을 제출했습니다.
(가) 따뜻한 봄날 점심 쯤 한 남자가 자리틀로 돗자리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그의 아내는 안방에서 쉬고 있었다. 남자가 자리틀로 돗자리를 만들다가 잠깐 졸고 있었을 때 들고양이 한 마리가 잽싸게 병아리 한 마리를 낚아챘다. 닭이 '꼬끼오' 하고 울자, 남자가 놀라 깨곤 장죽을 들고 고양이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놓치고 말았고, 아내가 뒤늦게 마루로 나왔다.(초3 학생의 글 전문)
(나) 따스한 오후 아저씨가 담뱃대를 물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푸드득!" 닭이 날뛴다. 들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채갔다. 아저씨가 고양이를 잡으려 하다 마루 아래로 떨어지고 아주머니가 놀라 마루로 나왔다.(초3 학생의 글 전문)
모든 그림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림 안에 담긴 다양한 요소들을 꼼곰히 살피고, 그런 요소들을 종합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이미 완성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그런 이야깃거리를 찾아내서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도록 하면 그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일 수 있습니다.

서당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한국의 대표적 풍속화가로 알려진 단원(檀園) 김홍도(1745~?)의 그림 '서당'은 옛날 서당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숙제를 제대로 안 해왔는지 한 학생이 훈장님께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고 훌쩍거리고 있습니다. 훈장님은 우는 아이가 여간 못마땅했는지 잔뜩 찌뿌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를 지켜보는 친구들의 반응입니다. 매맞은 아이 위쪽에 있는 아이들은 책을 펴놓고 아이에게 몰래 가리켜주고 있는 것인지 다음 차례라 열심히 외우고 있는지 정신이 없습니다. 화면 아랫쪽 친구들은 무엇이 재미있는지 하나같이 키득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그림 속 매맞은 아이의 입장이 되어 시로 써 보라고 합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 억울한 날
숙제를 했지만
훈장님께 방귀 뀌어
회초리를 맞았네.
방귀 뀐 게 잘못인가?
너무나도 억울하다.
훈장님 너무해!
(초3 학생의 시 '억울한 날' 전문)
(라) 회초리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회초리다.
훈장님은 왜 내 맘 모르실까?
언제나 찰싹! 찰싹!
기분 나쁜 소릴 내는
언제나 기분 나쁜 회초리
(초3 학생의 시 '회초리' 전문)


까치와 호랑이는 왜 함께 다닐까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며, 작중 등장하는 동물 캐릭터인 더피(호랑이)와 서씨(까치)도 함께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이 두 캐릭터가 우리 민화의 일종인 '작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라는 속담처럼 까치는 우리 문화에서 길조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와 반대로 한반도에 많이 서식했던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이자 산신으로 신격화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민화에서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액막이로 즐겨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작호도'에 대한 또다른 해석은 호랑이는 민중들을 괴롭히고 착취하던 탐관오리를 상징하고, 까치는 힘이 없지만 지혜로 권력자들에 맞섰던 민초들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호랑이 더피는 멍청하게 표현되고, 더피에게 준 갓을 빼앗아 쓰고 다니는 까치 서씨가 당당하고 지혜롭게 묘사되는 것도 이 해석에 따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피와 서씨의 원전이 되는 민화 '작호도'를 보고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마) 까치와 호랑이의 대화
항상 붙어다니는 두 친구
호랑이는 힘이 세고,
까치는 지햬롭고,
하루 종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서로를 지키는
까치와 호랑이의 대화
오늘은 네가 날 지켰어.
어제는 네가 날 지켰어.
하루 종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된다.
(초3 학생의 시 '까치와 호랑이의 대화' 전문)
(바) 까치와 호랑이의 이상한 싸움
너는 왜 나를 따라오니?
너야말로 왜 따라와?
자꾸 따라와 귀찮게 하면 먹어 버린다.
나는 머리에 똥싼다!
둘은 계속 싸우네.
언제쯤 그만 싸우려나?
싸우면서 왜 같이 다니냐?
(초3 학생의 시 '까치와 호랑이의 이상한 싸움' 전문)
이 외에도 수업 시간에는 혜원(蕙園) 신윤복(1758~?)의 '단오풍정'이나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 같은 작품들도 다뤘습니다. 신윤복의 그림을 보며 조선 시대 여인들에게 왜 단오가 가장 즐겁고 기쁜 날이었는지 생각도 해보고,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 언제인지 이야기 나누기도 했습니다.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어 보면 놀랍게도 그림을 그린 사람이 웬지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대답을 듣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 외따로 그려진 집 한 채가 그런 기분을 들게 만든다고 하네요. 그런 답변이 나오면 그제서야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를 가서 힘든 시련을 겪고 있었고, 그런 그에게 귀한 책도 구해주며 세상 소식을 전해준 역관 이상적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그림이 그려졌다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결국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면서 동시에 그런 식으로 그림을 읽어내는 자신의 마음을 읽는 작업입니다. '작호도'를 보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사이 좋은 친구관계를 읽어낼 수도 있고, 서로 아옹다옹하면서도 항상 붙어다니는 두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눈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다른 친구들의 다양한 해석들을 들으며 자신과 다른 해석조차 용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갖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고 항상 더 나은 해석에 열려 있다는 믿음이 아이들을 더 창의적이고 더 민주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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