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회화의 작은 역사]
화가들은 왜 현실을 똑같이 그리려고 했을까
인간은 왜 눈에 보이는 현실을 똑같이 그리려고 했을까요? 수만 년 전 알타미라 동굴과 라스코 동굴의 벽에 살아 숨쉬는 듯한 동물들을 새겨놓은 최초의 화가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을까요? 너무나 진짜 같아서 새들이 부딪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솔거의 소나무 그림이나 실제 포도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아서 새들이 쪼아먹으려 했다던 제욱시스의 포도 그림 역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던 인류의 오랜 욕망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안에 도사린 그러한 욕망 자체입니다.

혹자는 원시인들이 들소나 멧돼지 등 사냥감을 더 많이 잡고 싶은 소망이 벽화에 투영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그림을 그린 동기는 해명할 수 있지만, 원시인들이 극사실적 화풍을 선택한 까닭은 밝히지 못합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구석기인들이 "개념적 사유"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사실적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즉 지적 활동 수준이 높을수록 효율적인 정보 처리를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크게 그리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작게 그리게 됩니다. 반면에 구석기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본질을 생각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상의 디테일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어 역설적으로 높은 사실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곰브리치/백승길, 이종숭 번역, 서양미술사, 예경)
더 흥미로운 점은 외적 대상의 사실적 재현이 일종의 속임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포도 그림으로 새들의 눈을 속이는데 성공했던 제욱시스는 라이벌 화가인 파라시오스의 정교한 그림에 속고 말았습니다. 제욱시스는 커튼이 드리워진 파라시오스의 그림이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서둘러 커튼을 걷어내려 했지만, 그는 커튼 너머에 있는 그림을 결코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을 가려놓은 커튼 자체가 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화는 현실의 사실적 재현을 지향하는 회화가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현실을 모사한 일종의 가상이자 눈속임일 뿐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2차원 평면에 3차원의 실제 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하려 했던 환영주의 전통을 현실에 대한 거짓 묘사로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눈 앞의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와 결부되어 있고, 그러한 욕망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위협적인 자연의 막강한 힘을 점차 이해하게 되어 마침내 자연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동굴벽화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환영주의 전통은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획득하고, 나아가 자연을 인간의 의지 아래 통제하고자 했던 인류의 오랜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세계의 재현은 순전한 거짓일까
플라톤이 제욱시스의 포도 그림을 보았다면, 진짜 포도를 흉내낸 어설픈 포도의 짝퉁을 다시 흉내낸, 짝퉁의 짝퉁에 불과하다며 못마땅해 했을 것입니다. 그에게 유일한 '진짜 포도'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포도의 이데아(Idea)였기 때문입니다. 나무에 열린 현실의 포도는 이 포도의 이데아가 변질될 수밖에 없는 물질을 덧입고 나타난 모조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화가가 아무리 현실의 포도를 정교하게 재현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짜를 모방한 가짜의 가짜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플라톤과 달리 미메시스(mimesis)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타고난 본성인 미메시 덕택에 인간은 처음으로 배우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따라하는 흉내를 하면서 말을 배우게 됩니다. 식사 예절이나 인사,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모방을 통해 습득하게 됩니다. 따라서 미메시스는 단순히 진리를 왜곡시키는 속임수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대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끌어내 '형상화'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화가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선별과 선택의 작업을 거쳐 대상 안에 들어 있는 순수한 형상을 포착하여, 그것을 화폭 위로 가져와 '다시(re-)' '현재화시켜 보여주기(presentation)'를 한다는 의미에서 '재현(再現)'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화가의 미메시스는 실제 대상을 왜곡시킨 속임수가 아니라 환영 속에 '진리'의 단편을 담아내는 창조적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면 고통스러운 것들이 할지라도 그것들을 정확하게 그려낸 그림을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보면서 배우고, 각 사물이 무엇인지 추론하기 때문"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천병희 번역, 수사학/시학, 도서출판 숲) 우리는 화가의 예술적 미메시스인 그림을 보면서 '추론'을 통해 그려진 대상에서 실제하는 대상으로 건너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림이 포착한 대상의 본질을 배우게 되며 미학적 즐거움 외에 인식론적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하는 현실의 사실적 재현은, 비록 그것이 환영의 형태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플라톤의 주장처럼 진리에서 멀리떨어진 '가짜의 가짜'가 아니라, 허구라는 외피를 두른 진리의 탐사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한 그림도 독창적 예술로 볼 수 있을까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15세기 이후 서양의 회화는 렌즈, 거울,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같은 광학 장치를 활용해 사실주의적 표현이 눈에 띄게 정교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데이비드 호크니/남경태 번역, 명화의 비밀, 한길사)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광학 기구로, 외부의 빛이 작은 구멍이나 렌즈를 통해 들어오면 반대편벽에 상이 뒤집힌채로 투사되는 장치입니다. 호크니는 페르메이르를 포함한 일부 화가들이 이 투사된 이미지를 트레이싱(tracing, 윤곽을 따라 그리기)함으로써, 고도의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그 예로 페르메이르가 그린 '레이스를 뜨는 여성'(1669~1671)은 그의 사실주의적 기법이 극대화된 작품 중 하나로 종종 언급됩니다. 이 작품에서 레이스를 짜고 있는 젊은 여성의 손끝과 실은 선명하게 묘사되고, 그녀의 주변부는 살짝 흐릿하게 처리되어 마치 렌즈로 찍은 사진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처리 방식은 인간의 눈보다 카메라 렌즈의 시각에 가까운 효과라는 것이 호크니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호크니의 분석이 맞다면,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술가의 위대함은 "직접 손으로 그리는 능력"에 있다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광학 장비에 의존해 그림을 베껴 왔다면 천재가 아니라 단순한 기술자로 평가절하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호크니 본인은 "명화는 여전히 명화"이며 "그들은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다만 과학을 적극 이용했을 뿐"이라고 담담히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어쩌면 '순수하게 손으로만 그려야'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르네상스 예술은 과학과 분리되기 이전이었고, 그래서 회화 역시 과학적 탐구의 영역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노트에 카메라 옵스큐라의 구조와 빛의 경로에 대한 탐구를 상세히 남겼습니다. 그에게 회화는 단순히 감각적 즐거움에 호소하는 산물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원근법이 체계화되고 해부학 연구가 본격화되었던 르네상스기에 화가들은 현실을 좀 더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요구했고, 카메라 옵스큐라는 그러한 요구에 대한 하나의 답변으로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광학 장치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다 빈치,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반 에이크, 홀바인 등이 성취한 예술적 위대함에 결코 미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광학 기계를 이용해 단순히 '베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탐구 대상을 철저히 파고 들었고, 그 결과를 독창적인 예술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 구현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광학 장치가 더 이상 예술의 보조수단에 머물지 않고 독립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면, 과연 화가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사진의 탄생은 회화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1839년 루이 다게르가 사진술을 공식 발표하던 날, 당시 화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았습니다. "오늘부로 회화는 죽었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임무를 독점해왔던 미술의 지위는 박탈당했고, 화가들은 더 이상 기록과 재현을 위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광학 장치가 회화를 보조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전통적으로 회화가 담당해왔던 역할을 떠맡게 되자 회화는 자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회화가 더 이상 실제 현실을 재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면, 회화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사진의 등장 이후로도 회화가 회화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이상 사실적 재현으로는 사진을 따라갈 수 없었던 화가들은 새로운 탈출구를 절실하게 모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기계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회화는 정체성의 위기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시대에 다양한 영역들에서 발생한 새로운 흐름으로부터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산업 분야에서 획기적인 생산력을 가져온 증기기관은 기차 여행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했고, 화가들은 여행지에서 본 신비로운 장면들을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활발해진 해외무역으로 인해 유럽에 소개된 일본의 채색 목판화는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화가들에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동양의 파격적인 생략법과 화려한 색채는 원근법과 명암법, 비례의 법칙에 익숙한 서양 미술의 상투적인 화법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곰브리치는 "일본 채색 목판화는 유럽 회화의 기본적인 규칙을 과감하게 무시함으로써 인상주의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문화의 중심은 현대적 대도시 중심으로 발전해가고 있었고, 대도시는 "새로운 예술이 뿌리내리는 토양"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아르놀트 하우저/반성완, 백낙청, 염무웅 번역,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 창비) 새로운 시대의 화가들은 도시인의 눈으로 외부 세계를 관찰하고,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을 회화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어둠고 칙칙한 화가의 화실에서 작업하는 대신 빛으로 가득한 야외로 나가 찬란한 빛으로 넘쳐나는 자신들의 시대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이전의 회화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빛의 화가들'인 인상주의 화가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전통 회화의 관습에서 벗어나 빛과 색채, 순간의 인상을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서양 근대 미술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예술일까
현재는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고 미술관에서 사진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1893년 사진이 발명되었을 당시 예술계는 사진을 독립적인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의 예술성을 부정한 대표적인 인물인 보들레르는 "사진은 충실하게 사물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 그 기능은 화가를 위한 심부름꾼으로서 인정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은 아닌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사진을 경멸했습니다. 그는 사진을 "이것은 재능이 없다거나 게을러서 실패한 모든 화가들의 피난처가 되었다."며 비꼬았습니다.(샤를 보들레르/윤영애 번역, 화가와 시인, 열화당)
그들이 사진의 예술성을 부정한 이유는 사실 사진의 매체적 특성에 기인한 것입니다. 화가가 직접 손으로 그리는 회화와 달리 사진은 카메라의 셔터만 누르면 되는 단순한 작업으로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회화는 고유한 완결성을 지닌 유일무일한 하나의 작품을 남기는데 반해, 사진이 생산한 이미지는 무한한 복제가 가능했습니다. 게다가 사진은 외부 현실을 광학의 원리를 이용해 기계적으로 재현할 뿐 그 안에는 인간의 창조적 정신이 깃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간에 이런 비판에 맞서서 사진을 예술로 끌어올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랜더의 사진 ‘인생의 두 갈래 길’(1857)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사진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모델로 삼아 좌우 대칭 및 원근법 구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고전주의 회화 전통을 충실하게 모방했습니다. 레일랜더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감광물질을 바른 종이 위에 스케치를 한 다음 그 포즈대로 부분들을 촬영해서 인화한 사진 30장을 조합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 작품은 복제가 불가능했고 마치 회화처럼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일랜더의 시도는 사진이 예술이 되기 위해 자기부정을 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었습니다. 예술이 되고 싶었던 사진은 세 가지 점에서 자체의 근본 속성을 부정하며 회화를 모방했습니다. 우선 재현의 방식에서 사진술의 특징인 동시적 재현을 회화의 특징인 순차적 재현으로 바꾸었습니다. 레일랜더의 사진은 조합인화를 통해 사후적이고 인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두 번째로 재현의 성질에서 그는 사진술의 특징인 선명함을 회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흐릿함으로 바꿨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현의 주제에서 사진술의 특징인 실재 세계를 버리고 회화의 특징인 정신적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외부 실재의 재현보다 사진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데 주력하는 사진이었습니다.(기사, 예술로 인정받고 싶었던 19세기 사진…‘회화’인 척하다)

사진의 회화성을 강조하는 이런 흐름에 맞서 헨리 에머슨,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등은 사진이 갖고 있는 기계적 기록성과 렌즈의 사실적인 정밀성에 관한 미학을 주장하며 독립적인 예술로 사진 그 자체의 예술성을 추구했습니다. 스티글리츠가 레일랜더의 회화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제시한 사진의 특성은 빛의 리얼리즘과 기계적 복제성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스티글리츠의 ‘햇빛-폴라-베를린’(1889)입니다.
왼쪽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방 안의 어둠을 일부 밝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탁자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는 이 사진에서 빛의 리얼리즘은 방을 가로지르며 빛이 남긴 흔적, 즉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빛이 방 안에 남긴 줄무늬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사진과 사진 찍기에 대한 일종의 비유로 볼 수 있는데, 어둠에 잠긴 방은 카메라로, 빛이 들어오는 창문은 카메라의 셔터로, 빛이 블라인드의 흔적을 줄무늬로 남긴 맞은편 벽들은 필름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의 가운데에 보이는 탁자를 향해 수그린 여성의 머리 아래 놓인 액자 속 사진은 젊은 여성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머리 위쪽 벽에는 액자의 이미지를 한 번은 그대로, 또 한 번은 좌우를 반전시켜 복제한 사본들이 걸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진은 아마도 편지라도 쓰고 있는 것 같은 한 여성의 일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사진이면서도 동시에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스티글리츠는 사진이란 어두운 방에 들어온 빛이 남긴 흔적이며, 그로 인해 생산된 사진 이미지는 무제한적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기사, ‘순간포착’ 사진의 본성 위에 추상화의 예술성을 덧입히다)
스티글리츠의 사진은 실재하는 세계를 선명하게재현하는 스트레이트 사진으로서 사진 매체 특유의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사진이 회화에 버금가는 예술성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사진이 예술로서 독립적 지위를 누리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습니다.
미래의 까막눈은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헝가리 출신의 예술가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는 80여 년 전 이런 예언을 남겼습니다. "미래의 까막눈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날 모든 것이 카메라에 찍혀서 이미지로 존재하게 된 시대에 이미지를 분별하고 해석하는 능력인 비주얼 리터러시를 갖추지 못한다면 세계로부터 고립된 외톨이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호이너지의 말처럼 사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사진이 무언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시점을 선택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가 선택하지 않은 반대편의 실상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에서 보이는 것만 보게 된다면 모호이너지가 말한 까막눈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발터 벤야인이 독서에 대해 '쓰여 있지 않은 것을 읽기'라고 내린 정의는 사진을 읽어내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기 위해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제시한 두 개념인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회적 약속'에 의한 기호이듯 사진에서의 스투디움 역시 누구나 공감하는 객관적인의미 속에서 이해되는 문화적 코드입니다. 즉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의 틀에 따라 사진을 읽어내는 것이 스투디움입니다.
이와 대립하는 개념인 푼크툼은 보편적이고 분석적인 맥락 이전에 보는 이의 개인적 취향이나경험, 잠재의식 등과 연결돼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강렬한 자극을 뜻합니다. 바르트는 "스투디움은 언제나 궁극적으로 약호화되어 있지만, 푼크툼은 그렇지 않다"며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나를 진정으로 아프게 할 수 없지만,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은 혼란의 좋은 징후"라고 말했습니다. 푼크툼은 사진을 보는 이가 자신의 삶에 대한 경험을 동원하면서 스스로 사진의 의미를 구성해가는 것을 뜻합니다.

바르트는 이 두 개념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 사진 분석을 예시했습니다. 1926년 제임스 반 더 지(James Van Der Zee)는 미국의 한 흑인 가족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에서 흑인 가족들은 형식과 격식을 차리고, 복장을 제대로 갑춰 입고 있습니다. 사진작가는 이를 통해 사진 속 인물들이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백인의 모습으로 치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의 의도를 고려해 사진을 읽어내는 것이 스투디움입니다. 하지만 바르트는 이 사진이 흥미를 끌긴 하지만, 자신을 '찌르지'는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찌르는 것은 사진에서 아주 세부적인 요소, 예컨대 여자의 넓은 허리띠, 뒷짐 진 여자의 팔, 끈 달린 여자의 구두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르트가 과거 흑인 유모를 떠올리면서 느꼈던 푼크툼이었습니다.(기사, 스투디움과 푼크툼, ‘상식’위에 ‘필(feel)’을 꽂다)
사진을 읽기 위하여
1989년 6월 5일 중국 베이징에서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AP 사진기자인 제프 위드너는 인상적인 한 장의 사진을 남겼습니다. 중국의 한 청년이 홀로 탱크를 막고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사진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제목 : 탱크맨과 람보
악은 평범한 모습이다. 폭정을 멈추게 할 방법은 그 평범함에 대해 곱씹어보는 것이었다. 계엄군이었던 탱크 조종사도 한 사내의 평범한 생명을 생각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렇게 큰 능력도, 그다지 큰일도 아니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저항의 출발점이다. 결과는 대단했다. 그 사소한 행동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저항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평범함을 벗어난 작은 영웅의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김창길,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들녘출판사)
사진에 임의적으로 '제목'을 붙이고, 이미지를 읽어서 문자로 전환하는 훈련은 사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사진의 마법에 포획되는 것을 막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사진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실시간으로 이미지로 전환시키기 때문에 사진 속 대상을 현실에 실재하는 대상과 등치시키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진 속 피사체는 이미 죽었거나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진은 과거의 한 순간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지표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사진을 보는 현재의 우리에게 상실과 죽음을 환기시키는 매체입니다. 따라서 시진을 읽는다는 것은 사진 속 타자의 부재를 애도하는 일인 동시에, 여전히 흐르는 시간 속에 살아숨쉬고 있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다음의 두 사진들은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자유롭게 제목을 붙여보고, 사진에서 보이는 것들에 유의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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