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초4 선한비
필통을 뚫을 것만 같았던
내 연필이
샛노란 색깔의 몸으로 새빨간 지우개와
늘 어디서나 같이다니던
내 연필이
언제가부터 슬슬 작아지더니
연필깎이에도 안 들어가더니
지우개보다도 짦아지더니
빨간 지우개도 사라지더니
이젠 간이 연필깎이로만 깎이더니
내 손 안으로 쏙 들어가더니
내 연필이 어느새
몽당연필이 되었네.
코멘트) 아끼던 연필이 순식간에 몽당연필이 되어 사라진 슬픔을 노래한 시입니다. 1연은 한창 콧대 높았던 초창기의 연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새빨간 지우개와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었던 샛노란 연필의 혈기왕성했던 시절이 보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반복되고 있는 '내 연필이'라는 구절에는 찬란했던 그 시절을 떠올릴수록 상실감만 더 커지는 시인의 고통과 슬픔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2연에서는 훤칠했던 연필이 점차 몰락하고 소멸해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슬슬 작아지더니 기존 연필깎이로도 깎을 수 없게 되었고, 심지어 지우개보다 작아지더니 결국에는 시인의 작은 손 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아져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연필과 단짝친구였던 빨간 지우개마저 어디론가 떠나버려서 시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깊은 절망감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시인이 절감해야 했던 고통스런 심경은 반복되는 각운 '-니'에 담긴 애절한 외침 속에 절절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그 사실, 끝끝내 부정하고 싶었던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던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시로 승화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겸허히 인내하는 시인의 성숙한 자세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뭐 믿거나 말거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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