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중1

오 헨리/김희용 번역, 오 헨리 단편선, 민음사

ddolappa72 2026. 6. 8. 00:21

 

 
잘 짜인 놀라움의 세계

오 헨리(O. Henry, 1862~1910)의 단편소설들보다 더 잘 쓰여진 작품들이 많겠지만, 그보다 더 반전(plot twist)의 묘미를 잘 살린 작가는 드물 것 같습니다. 그의 대표작들인 '경찰과 찬송가',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이십 년 후에', '마녀의 빵' 등만 하더라도 모두 독자의 예상을 기분좋게 배반하는 반전 기법이 적절히 사용되어 깊은 여운을 선사합니다. 오 헨리는 이 서술 전략을 통해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유머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대중문화 예술인 영화에서 반전 기법은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장르에 활용되어 관객의 의표를 찌르며 충격과 공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곤 합니다. 영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1968)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바닷가 모래밭에 반쯤 묻힌 채 모습을 드러낸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 오열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도착한 곳이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외계 행성이 아니라 실은 미래의 지구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Psycho, 1960)'에서 살인범으로 의심받던 모텔 여주인 노파는 이미 죽었고 그의 아들이 1인2역으로 모친 행세를 하며 살인을 저질렀다는 진실이 밝혀지며 공포가 극대화되었습니다. 반전 영화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1995)나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 역시 오 헨리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반전 기법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중요한 스토리텔링의 요소로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그의 <시학>에서 비극적 효과를 유발하는 핵심 요소로 '급전(Peripeteia)'과 '발견(Anagnosis)'을 언급했습니다. 급전은 사건들이 일어난 과정에서 개연성과 일관성에 따라 발생하는 급격한 방향 전환을 뜻합니다. 발견은 무지의 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코린토에서 온 사자는 오이디푸스가 부친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예언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그를 양육해준 플뤼보스 왕과 메르페 왕비가 그의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러나 도리어 이것이 화근이 되어 모든 진상이 밝혀짐으로써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찌르고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코린토의 사자는 기존에 전개되던 사건의 전개 방향을 엉뚱한 방향으로 비트는 '급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 하던 신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급전과 발견이 결합하여 복합적인 플롯을 이루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상의 플롯으로 정의했습니다.(아리스토텔레스/천병희 번역, 시학, 문예출판사)

그런데 인지과학자 베라 토빈에 따르면, 우리가 반전 기법이 사용된 서사에서 경험하게 되는 놀라움은 인간와 복합적 사고 과정이 참신한 스토리와 공모하여 만들어낸 결과일 뿐입니다. "잘 짜인 놀라움을 갖춘 플롯이란 불현듯 사건들을 재해석하게 만들고, 그 순간 이렇게 재해석할 근거가 이미 쭉 거기에 있었음을 느끼게 하는 플롯을 말한다. 즉, 예기치 않았을 뿐 아니라 폭로적인 특질을 가진 놀라움이라야 한다.” 즉 반전 서사가 '잘 짜인 놀라움'을 주려면 '급전'과 '발견'이 앞선 사건으로부터 개연적 혹은 필연적인 인과관계 속에서 생겨난다는 인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독자는 자신이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예측한 바와 실제 경험이 불일치할 때 발생하는 모순을 발견하고, 앞선 사건들을 다시 읽고 일관성을 갖춘 이야기로 재조직함으로써 지적 만족감에 도달하게 됩니다. 

베라 토빈은 반전 미학의 핵심은 우리의 뇌가 스토리와 공모해서 거짓 연속성을 생산한다는 데 있다고 분석합니다. 즉, 놀라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에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독자가 가진 인지의 한계, 즉 예측에 대한 믿음, 기억의 오류, 잦은 망각 등이 스토리를 해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마음껏 주물러 스토리에 활용하는 작가가 놀라움을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반전 서사가 주는 쾌감은 독자와 작가 그리고 작품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 식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인지과학적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베라 토빈/김보영 번역, 놀라움의 해부, 풀빛)

 



베어먼은 왜 존시를 위해 희생을 했을까

'마지막 잎새'에서 가난한 예술 지망생 존시는 폐렴에 걸린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며 창밖의 담쟁이덩굴의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이상한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의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한 수는 실패한 화가인 베어만 영감에게 하소연했고, 영감은 세찬 비가 쏟아지고 사나운 돌풍이 부는데도 밤새 마지막 잎새를 그렸습니다. 존시는 휘몰아치는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은 마지막 잎새를 보고 삶의 의욕을 되찾아 건강을 회복하지만, 그림을 그린 베어만 영감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반전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은 작가가 베어만 노인을 술주정뱅이에 실패한 화가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항상 걸작을 그리겠다고 다짐했지만 단 한 번도 시작조차 해 본 적이 없으며, 변변치 않은 실력 때문에 가난한 젊은 화가들을 위해 모델 노릇을 해 주면서 받는 약간의 돈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수로부터 존시의 사연을 들었을 때 그의 반응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격앙되어 있었습니다. "그 빌어먹을 담쟁이덩굴에서 이파리 좀 떨어진다고 죽겠다는 멍청한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랬던 베어만 영감은 왜 존시를 위해 비바람을 맞으며 담벼락에 마지막 잎새를 그렸던 것일까요?

사실 베어만은 매일 독한 술에 취해 있는 술주정뱅이에 성질 사나운 왜소한 노인일 뿐이었지만, 젊은 두 화가인 존시와 수를 보호하기 위해 사나운 특별 경비견 역할을 자임할 만큼 두 사람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존시의 딱한 사정을 듣고 독설을 쏟아내긴 했어도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대놓고 눈물을 줄줄 흘릴' 만큼 동정심이 풍부했습니다. 게다가 "여긴 존시 양처럼 좋은 사람이 앓아누워 있을 곳이 못 되는데. 언젠가 내가 걸작을 그리면 그땐 다 같이 여기를 떠나자고. 그럼! 꼭 그러자고."라고 다짐할 만큼 존시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작가가 준비한 이런 치밀한 복선 때문에 독자는 그의 희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작가가 베어먼으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도록 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실패한 화가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베어먼을 지탱시켜온 근거는 자신도 언젠가 걸작을 그리리라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가난과 병마에 절망한 나머지 모든 희망을 상실해 가는 존시를 지켜보는 것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고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존시에게 희망을 되찾아주기 위해 할 수 있던 유일한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작가는 이 둘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 신음하는 자들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릅니다. 설령 그로 인해 자신의 희생을 대가로 치르게 되더라도 타인에게 밝혀준 희망의 불빛으로 인해 그의 삶 역시 무의미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고 가치있는 것으로 빛날 수 있습니다. 담벼락에 그려놓은 담쟁이덩굴의 잎새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걸작이었듯 말입니다.

 



우발적 세계와 인간의 윤리적 선택

'경찰과 찬송가'의 주인공 소피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범행을 저질러서 감옥을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면 별 고민 없이 3개월 동안 안락한 겨울을 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법이 자선보다 친절"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소피의 야심찬 월동 계획은 이상하게 뒤틀어져 번번히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오래된 교회에 들어간 소피는 오르간 연주자의 찬송가 연주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의 절망적인 운명과 싸우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선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 순간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섬에서 금고 삼 개월"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오 헨리의 이 텍스트는 그가 글쓰기를 통해 싸우고 있었던 현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즉 그가 경험한 현실의 본모습은 행운일 수도 있고 불운일 수도 있는 운(티케 tyche)에 의해 지배되는 변덕스럽고 우발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운의 지배력을 무시하고서는 인간이 선한 삶을 살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통찰입니다.

실제로 '마녀의 빵'에서 "동정심 많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마사 양은 계속 딱딱하게 묵은 빵을 사 가는 손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가 큰 낭패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손님을 '가난한 화가'로 단정한 뒤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해서 쌓아올린 그녀의 확증편향적 세계는 과도한 동정심으로 인한 사건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져버렸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세계의 우발성과 가변성에 무지한 채 행해지는 맹목적 선행이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을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친구와의 어리석을 만큼 불확실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1,600킬로미터를 달려온 '미꾸라지' 밥은 경찰이 된 친구 지미에 의해 체포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밥과, 경찰 수배 중인 친구를 체포한 지미 중에서 누가 더 윤리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밥의 행동이 어리석은 이유는 자신이 친구가 경찰이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고, 심지어 그와 대화를 했어도 친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현실은 인간적 의리보다 국가의 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전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일부를 구성하는 그 법조차 운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완벽한 개심'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명한 금고털이범 지미 밸런타인은 크게 한탕을 한 후 랠프 D. 스펜서로 개명한 후 은행가의 딸과 약혼한 후 평범한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형사 벤 프라이스 앞에서 그의 정체가 탄로날 뻔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장인 어른이 자랑스러워하던 신형 금고 안으로 어린 조카딸이 들어가 갇혀 버린 것이었습니다. 지미가 솜씨를 발휘해 금고를 열게 된다면 조카딸의 목숨을 살릴 수는 있지만 그의 정체가 탄로나 벤 프라이스에게 체포될 것이 뻔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지미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금고를 열어 어린 목숨을 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놀라운 반전은 체념한 채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지미를 벤이 모른 체하고 떠나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제목 그대로 법의 집행자 벤은 범죄자 지미가 완벽하게 새로운 사람으로 개심한 것을 확인한 후 그를 풀어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 헨리의 반전 기법은 단순한 서사 기법 중 하나가 아니라 독자에게 윤리적 선택을 권유하는 기제로 볼 수 있습니다. 독자는 그의 서사 전략에 따라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흔들리게 되는 인식론적 위기를 겪게 되고,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윤리적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 헨리의 특징은 불안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함과 덕성에 대한 믿음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름다운 까닭은 서로에게 쓸모없는 선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위해 자신이 아끼던 것을 희생하는 고결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들 역시 그가 마련해 놓은 안전한 지반 위에서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