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4학년

엘윈 브룩스 화이트/김화곤 번역, 샬롯의 거미줄, 시공주니어

ddolappa72 2026. 5. 31. 23:18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가슴 뿌듯한 것

아이들이 읽는 수많은 책들이 다루는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우정'입니다. 우정은 아이들이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맺게 되는 최초의 사회적 관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나와 완벽하게 다른 타인에게서 발견하는 감정의 완벽한 일치는 놀라운 행복감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천병희 번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도서출판 숲) 그는 우리가 상대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우정(philia)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사랑할 만한 것'이어야 하며,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서로가 선의를 가지고 그 선의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우정을 유익함(이익), 즐거움(쾌락), 선(덕)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그런데 서로에게 더 이상 이익을 주기 못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달라져 즐거움을 주지 못할 경우 이익과 쾌락에 기반한 우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이에 반해 친구를 그 자체로 사랑하면서 함께 서로의 훌륭한 성품을 존중하는 우정은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며 참다운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철학자 키케로는 우정이야말로 "불사의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칭송했습니다.(키케로/천병희 번역,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도서출판 숲) 키케로는 우정(amicitia)이라는 말이 사랑(amor)에서 파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 사랑은 그 대상을 필요나 이익을 떠나 자진하여 좋아하고, 순수한 선의로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친구에게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그에게서 얻게 되는 이익 때문이 아니라 친구에 대한 사랑 그 자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진정한 친구 사이에 맺어진 선의의 유대가 제거된다면 가정이나 도시도 존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정은 모든 공동체의 기초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샬롯의 거미줄>에 등장하는 돼지 윌버와 거미 샬롯의 우정이 아름다운 이유도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각각 어린 돼지와 늙은 거미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아무런 공통분모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윌버가 다른 동물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한 존재"로 경멸받고 "끔찍한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샬롯은 그에게 선뜻 친절한 호의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친구를 원하니, 윌버? 내가 네 친구가 되어 줄게." 

샬롯이 윌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거미줄로 짜 놓은 문구는 사실 친구의 영혼에 깃든 고결함을 발견하고 친구에게 건낸 찬사였습니다. "난 그냥 보통 돼지야." "나한테는 네가 근사한 돼지야. 바로 그게 중요한 거야. 너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고, 나한테는 네가 놀라워." 그 덕택에 어리석고 미숙한 존재였던 윌버는 점차 성숙하고 신중한 인격으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정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뿌듯한 것"이라는 윌버의 감탄에는 친구 샬롯에 대한 고마움과 그로 인해 누리게 된 존재의 충만한 행복이 배어 있습니다. 이렇듯 진정한 우정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기쁨과 행복을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됩니다. 

"왜 나에게 그렇게 잘해 주었니? 난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데. 난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

"너는 내 친구였어. 그것만으로 굉장한 일이야. 내가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거미줄로 짰던 거야. (....) 어쩌면 난 널 도와 줌으로써 내 삶은 조금이나마 승격시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어. 어느 누구의 삶이든 조금씩은 다 그럴 거야."
 

영화 '샬롯의 거미줄'(2006)



템플턴도 친구일까

농장 공동체 내에서 쥐 템플턴은 오직 먹을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이기적인 별종으로 여겨졌습니다. 다른 동물들에게 그는 "도덕도 없고, 양심도 없고, 거리낌도 없고, 남에 대한 배려도 없고, 체면도 없고, 따뜻한 마음도 없고, 뉘우침도 없고, 고상한 감정도 없고, 우정도 없고, 그 어떤 것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탐욕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템플턴이 다른 동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펀의 오빠 에이브리가 막대기로 샬롯을 잡으려다 그만 템플턴이 숨겨 놓은 곯은 거위알을 밟고 고약한 냄새 때문에 사냥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의도치 않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템플턴은 중요한 장면에서 친구들을 돕는 결정적 역할을 종종 수행했습니다. 그는 잡지 조각을 샬롯에게 가져다 줘서 그녀가 윌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문구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품평회에서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에 놀라서 윌버가 기절해서 상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윌버의 꼬리를 깨물어서 의식을 되찾도록 해서 상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샬롯이 천장에 낳아 놓은 알주머니를 윌버에게 가져다 준 것도 바로 그였습니다. 그렇다면 템플턴 역시 윌버의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템플턴은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만 친구들을 도왔습니다. 그가 샬롯에게 신문지 조각을 가져다 준 것은 그녀가 윌버의 여물을 빌미 삼아 그를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또 샬롯의 알주머니를 윌버에게 가져다 준 것 역시 그가 자신의 밥을 먼저 먹을 권리를 그에게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템플턴과 대화하는 경우 '~하면 ~해줄게' 식으로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그가 친구들과의 관계를 오직 '유용성'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만 움직이기 때문에 그와의 우정은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는 언제든 손쉽게 상대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윤과 효용성을 위한 우정만 추구하는 템플턴을 친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그리고 성인들의 세계에서, 템플턴과 같은 유형의 친구와 완전히 단절하게 된다면 생존을 위한 경제적 활동은 아예 불가능하게 될 지 모릅니다. 그래서 '친정한 친구'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친구'가 아니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과 동물도 친구일까

보잘것 없는 돼지 윌버와 사려깊은 거미 샬롯의 우정에 집중하다 보면 이 동화가 여덟 살짜리 소녀 펀의 다급한 외침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아빠는 도끼를 들고 어디 가시는 거예요?" 한배에서 태어난 새끼들 중 맨 먼저 태어난 새끼를 무녀리라고 하는데, 무녀리는 너무 작고 약해서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에러블 씨는 오랜 전부터 해오던 대로 새끼 돼지를 없애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펀은 태어날 때 몸집이 작다는 이유로 갓 태어난 새끼를 죽이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이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나쁜 일이라며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펀은 심지어 무녀리 돼지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아빠를 공격했습니다. "만약 제가 태어날 때 몸집이 아주 작았다면, 아빠는 저를 죽이셨겠어요?" 펀의 아빠 애러블 씨는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고 반박했지만, 펀에게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지닌 대등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애러블 씨와 펀의 논쟁은 우리가 이 책의 주제를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흥미로운 논점을 제공합니다. 인간은 과연 동물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동물을 인간의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펀의 투쟁 덕택에 목숨을 구한 윌버는 이내 곧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펀의 품을 떠나 새롭게 정착한 농장의 주인인 주커만 씨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윌버를 햄으로 만들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동화풍의 세상 이면에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 실은 가녀린 생명체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죽음의 공포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이 동화인 까닭은 그런 잔혹한 현실 세계의 공포를 진정한 우정을 통해 극복하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세계에게 펀에 의해 구출된 윌버의 목숨은 동화의 세계에서 거미 샬롯의 기발한 재치를 통해 또 다시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샬롯이 죽으며 남겨 놓은 알주머니를 윌버가 구해내서 514마리의 새끼 거미들을 부화시킴으로써 다른 존재들에 목숨을 의존하던 윌버는 생명을 구하는 존재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이 동화는 단순히 우정을 예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연약한 존재들이 우정을 맺음으로써 생명을 이어나가는 우주적 신비를 드러내는 이야기로 변모하게 됩니다.

펀의 엄마는 동물들과 거미가 주고받는 대화를 엿듣는 딸의 상태를 근심어린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펀의 그러한 능력은 인간을 특권을 지닌 우월한 존재로 생각하는 어른들과 달리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공평무사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동물들을 비롯한 주변의 보잘것없는 벌레들조차 고귀한 생명체이자 자신의 친구들로 인식하고,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순박한 마음이 그런 초능력을 그녀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지구가 안고 있는 환경파괴의 문제는 인류가 모든 것을 생명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펀의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자연 전체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함께 더 높은 존재가 되기 위해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될 때, 우리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눈에도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이 비로소 보이게 될 것입니다.(정현종의 시 '비스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