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언, 금방울전, 웅진북클럽

돌보고 보살피는 여성 영웅
<금방울전>은 <박씨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여성 영웅소설입니다. <박씨전>이 병자호란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반면, <금방울전>은 판타지적 성격이 강하고 고전 소설에서 흔히 발견되는 익숙한 화소(話素)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막씨 부인이 신비한 꿈을 꾸고 금방울을 낳는다거나, 금방울이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라는 비정상적인 형태로 태어난다거나, 도술이나 초능력을 이용해 괴물을 퇴치하고, 괴물의 방해로 전생에 못 이룬 사랑을 이룬다는 설정 등이 그렇습니다. 또 금방울이 열여섯 살 이후에 저주가 풀려 아리따운 외모의 여성으로 변신한다는 것 역시 익숙한 모티프(motif)입니다.
그런데 <금방울전>의 특별함은 익숙한 화소들을 동원해 여성을 남성 못지 않은 영웅으로 그려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남성 영웅들이 상대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금방울은 그 대신 상대방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고 스스로 행동을 교정하도록 유도합니다. 금방울은 자신을 훔쳐간 목손을 직접 징벌할 수 있었지만, 목손이 아내의 충고를 듣고 금방울을 돌려주도록 유도했습니다. 목손의 무고로 감옥에 갇혔을 때도 사또 장원이 부인의 조언을 듣고 사건을 재조사해서 진상을 알도록 했습니다. 그가 해룡을 돕는 방식도 그의 고된 노동을 덜어주거나 추위와 배고픔을 잊을 수 있게 보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즉 금방울은 '살림'에 한 평생을 묵묵히 바쳤던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을 의인화한 사물입니다. '살림'은 말 그대로 더럽혀지고 무질서해진 것들을 정화하고 정돈해서 다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금방울은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을 직접 죽이는 대신에 해룡이 제거하도록 물러섰던 것입니다.
이런 살림의 정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보살핌과 돌봄의 형태로 실천되었습니다. 금방울이 막씨 부인을 엄마로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남편도 없이 홀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막씨 부인은 시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커다란 절망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이제 세상에는 그녀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막씨 부인에게 밤이면 품속으로 들어와 곤히 잠을 자고, 남의 집 방아를 찧어 주고 땅거미가 질 무렵 돌아오면 데굴데굴 굴러 나와서 반갑게 그녀를 맞이해주는 금방울은 다시 그녀가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도적떼에 쫓겨 부득이하게 세 살짜리 아들을 버렸다는 죄의식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평생을 시달리다 숨이 끊겨버린 장원 부인을 금방울이 되살린 것도 이런 돌봄의 정신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방울은 남성들이 만든 질서 안에서 그들보다 우월한 힘을 과시해서 영웅으로 칭송받는 인물이 아니라, 그 동안 무시되고 침묵을 강요받았던 여성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여성 영웅소설이라 할 만 합니다. 금방울이 얼굴이 없고 말을 못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 역시 침묵을 강요받았던 이 땅의 수많은 익명의 여성들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
금방울은 원래 남해 용왕의 막내딸로 동해 용와의 셋째 아들 해룡과 혼인을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금방울이 괴물에게 목숨을 잃게 되면서 그들의 인연은 맺어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를 가엽게 여긴 옥황상제가 그들을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내서 전생에서 못다 이룬 인연을 인간 세상에서 이루도록 배려했다는 것이 금방울의 전사입니다. 따라서 금방울이 현생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전생에서 맺힌 원한을 풀고, 못다 이룬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금방울 자신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해결자 노릇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전생에서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괴물은 현생에서 다양한 남성들의 모습에 투영되어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목손이라는 부자는 신통방통한 금방울이 탐이 난 나머지 막씨 부인이 일하러 나간 틈을 타서 금방울을 강제로 훔쳐갔습니다. 심지어 금방울 때문에 자신의 집이 타 버렸다고 생각하고 사또 장원에게 금방울은 도깨비 귀신이 붙은 요상한 물건이라고 누명을 씌워 신고를 했습니다. 사또 장원 역시 금방울을 쉽게 체포할 수 없자 막씨 부인을 인질로 삼아 금방울을 붙잡고는 철퇴로 내려치고, 쇠망치로 두들기고, 뜨거운 가마솥 기름에 넣는 등 무지막지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머리 아홉 달린 괴물 왕은 금선 공주를 납치해 가두어 놓았는데, 이 금선 공주는 금방울과 동일한 시련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의 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금방울은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적 질서의 희생자인 여성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방울이 가슴 속에 맺혔던 원한을 푸는 해원(解寃) 과정이 독특한 여성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그녀는 계급적 경계를 뛰어넘어 여성 집단 전체의 연대를 강조합니다. 그녀는 하층계급의 막씨 부인의 외로움을 위로했고, 상층계급의 장원 부인의 자식 잃은 슬픔을 달랬으며, 최상층계급인 금와공주를 괴물로부터 구했습니다. 남성적 해결 방식을 고집하다 문제에 봉착한 목손과 사또 장원, 해룡 사건의 담당 사또 등에게 부인들이 조언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여성들에게 남성 집단의 삶과 운명을 조절할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금방울을 중심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는 상호 보살핌의 연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금방울은 여성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구현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방울은 남성 주인공 해룡의 조력자 역할에 머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결국엔 다시 남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예속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곤 합니다. 금방울이 괴물 왕을 직접 해치우지 않고 해룡에게 최종 결정권을 양보한다든지, 열여섯이 되어 아름다운 외모를 되찾고 해룡과 혼인해서 자식들을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것으로 끝나는 것 역시 가부장 이데올로기에 여전히 종속된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금방울은 해룡을 도와 장군의 지위에 오르게 한 후 족자와 편지를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해룡이 자신을 찾아 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월이 흐른 후 해룡은 나라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삶이 팍팍해지자 어사가 되어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는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한 고을에 가면 관아의 곡식 창고를 열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해 골고루 나눠주고,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못된 벼슬아치들을 벌을 주고 자리에서 내쫓았습니다. 이제 해룡은 괴물을 퇴치하고 오랑캐를 무찌르는 용감한 장수가 아니라 돌봄과 보살핌이라는 여성의 리더십을 체화한 인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래서 해룡과 금방울의 재결합은 단순히 여성 주인공 금방울이 남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상처를 치유하고 슬퍼하는 자들을 보듬어 안아주는 여성적 삶의 원칙을 남성 주인공이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도적 떼의 출현, 괴물에 의한 납치, 오랑캐의 침입, 흉년으로 인한 고난 등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남성적 통치의 한계를 노출시킨 위기의 신호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돌봄과 보살핌이라는 여성적 원리를 수용할 때 세상과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했던 괴테의 통찰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금방울이었을까
이 고전소설을 읽으며 들었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는 왜 여성 주인공이 그 많은 사물들 중에서 하필 '방울'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딸랑딸랑 맑고 고운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금방울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는 귀엽고 앙증맞은 여자아이가 연상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이 이 소설의 주제와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일 뿐더러 그 소재가 꼭 금방울이어야 했었는지는 여전히 의아할 따름입니다.
금방울이 선택된 사연을 최대한 추측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단군신화에서 환인(桓因)은 그의 아들 환웅(桓雄)을 땅으로 보내면서 제왕의 지위를 나타내는 표지로 세 개의 천부인(天符印)을 주었습니다. 천부인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흔히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칼, 태양을 상징하는 청동거울, 그리고 신의 소리를 뜻하는 청동방울이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즉 고대사회에서 방울은 신와 인간을 연결하는 신령스런 힘을 지닌 물건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역사 시간에 배운 팔주령도 주술적 기능을 담당한 도구였습니다.
신과 소통함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 신앙을 무속(巫俗)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의 '巫(무)'라는 글자 모양은 샤먼이 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방울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인 무구(巫具)에는 신칼, 삼지창, 작두 외에도 방울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여기서 방울은 '무령(巫鈴)'이라고도 불리며 불쌍한 영혼을 달래고, 나쁜 귀신을 쫓아내는 진혼용 무구로 사용됩니다.(기사, 삼지창, 작두, 신칼... 대장장이가 만든 무속용품들) 무속에서 사용되는 방울은 2개 또는 3개가 한쌍으로 되어 있는 군웅방울을 비롯하여 칠성(七星)방울, 대신(大神)방울, 아흔아홉상쇠방울 등 여러 종류가 사용됩니다. 이중 칠성방울을 구성하고 있는 일곱 개의 방울에는 ‘수(壽)’ 또는 ‘복(福)’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습다. 무속에서 무당이 굿을 하면서 칠성방울을 흔드는 것은 인간에게 명을 주고 복을 준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검색어 '칠성방울')
이렇게 볼 때 <금방울전>이 여성 주인공을 '방울'로 설정한 데는 무속 전통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무속에서 방울은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로 사용되어 왔고, 금방울 역시 소설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선이 꿈에 나타나 금방울에게 오색 비단, 파란 부채, 빨간 부채, 까만 깃발 등 신비한 힘을 지닌 신령스런 물건을 내주었다가 금방울이 저주가 풀려서 사람의 모습을 되찾자 보물들을 거두어간 것 역시 신내림을 받아 신을 섬기게 되는 무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해룡의 등에 있는 붉은 점 일곱 개는 북두칠성을 인간의 수명과 재수를 관장하는 칠성신으로 섬겼던 무속 신앙을 신체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금방울이 지닌 신기한 힘 그 자체가 아니라 금방울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신령스런 힘을 지닌 사물로 변한 사람이 한 일이라곤 외롭고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춥고 굶주린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흩어진 가족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금방울이 한 일들은 이미 여성들이 일상 생활에서 줄곧 해오던 것들입니다. 따라서 무속 신앙적 요소는 하찮고 사소한 것으로 폄하되어 온 여성의 역할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 것이지, 무속 그 자체를 위해 인용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금방울전>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여성은 한 사회나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고 있는 소설로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혹여나 여전히 하찮고 사소한 것으로 무시하거나 경멸하고 있지는 않은 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