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배,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 보림

어떤 방식으로 읽게 할 것인가
책 읽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무슨 책을 함께 읽을까 하는 문제보다 책을 어떻게 읽게 할까 하는 문제로 더 고민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책에 대한 이해도나 태도가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학년의 경우 수업 내용이 지루하거나 따분하다고 느끼게 되면 곧바로 책 읽기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독서를 멀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흥미있어 할 만한 것들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결국엔 독서에 대한 흥미를 저해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어쩌면 독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접근 방식의 차이에 따라 같은 책이라도 아이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고, 아이들이 도달할 수 있는 이해의 수준 역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사의 접근 방식은 아동의 연령과 발달 정도 그리고 잠재력 등을 고려하여 적절할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기본적으로 책은 읽는 사람의 사고를 자극하고, 그의 생각을 변화시키거나 확장시키는 매체로서 가치를 지닙니다. 그래서 아동이 책이 던지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질문을 설정하고, 교사는 아동이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데서 만족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아이들 스스로 생각을 변화시키고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이야기들은 도령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엇으로 변했을까?' 하는 질문과 '이야기들은 왜 도령에게 복수하려고 했을까?'라는 두 종류의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아동이 '옹달샘, 산딸기, 청실배, 독뱀'이라고 대답했다면 정답을 맞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아동이 책의 내용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를 테스트할 뿐 그의 사고를 확장시켜주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이 질문이 전혀 무가치하다고 폄하되어서는 곤란한 것은 독서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책에 실린 정보를 기억해서 지식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 읽기에 관한 모든 수업이 이런 사실 확인 질문으로만 가득차 있다면 아동은 곧바로 따분해하며 책읽기를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달리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려면 우선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던 도령은 남에게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서 주머니에 넣고 꽁꽁 졸라맨 뒤 자기 방 벽장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만 했던 이야기들은 앙심을 품고 도령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대답을 내놓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야기들이 답답해서요.', '도령 때문에 자기들이 벽장에 갇혀서요.' 등처럼 불완전하게 대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경우 추가적인 질문을 던져서 생각을 더 이끌어 내야 합니다. '왜 이야기들은 답답했을까?' 추가적 질문을 통해 아이들은 아동은 원래 이야기는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며 살아야 하는데 보자기에 갇혀 있어 답답했을 거라는 대답에 이르며 저절로 이야기의 속성을 깨닫게 됩니다. 즉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도령은 왜 이야기들을 벽장 안에 가두었을까?' 하고 물음으로써 도령이 이야기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려야 할 이야기를 도령이 욕심 때문에 혼자만 간직하려 했기 때문에 이 사단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책은 어떻게 경험이 될 수 있을까
독서는 책 장을 넘길 때 필요한 약간의 근력과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재빠르게 움직이는 시각, 그리고 이런 감각 정보들을 뇌에서 종합하는 지적 활동으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책의 단단한 겉표지와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피부로 감지하고, 그것이 새 책이건 헌 책이건 상관없이 종이와 잉크에서 뿜어져나오는 독특한 향기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책의 물성을 항상 전제한 육체적 활동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독서라는 행위 자체는 작가가 문자로 코드화한 경험과 사유를 다시 풀어헤쳐서 우리의 감각 정보로 재구성하는 것이기에 독서는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끔찍한 살육이 일어나는 전쟁터를 묘사한 장면을 읽을 때 문득 코끝에 진하게 맴도는 화약과 피 냄새를 맡고 몸을 잔뜩 움추리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는 책 읽기가 어떻게든 그들의 육체를 자극하는 활동이 되도록, 그래서 그들의 몸에 독서의 흔적이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심하고 또 고심해야 합니다. 가장 손 쉬운 예는 희곡을 읽었으면 아이들이 직접 연극을 해보도록 해서 문자화된 텍스트를 몸으로 구체화시켜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도에 대해 배웠으면 살고 있는 동네의 약도라도 직접 그리게 해서 아는 것을 체화시키는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사하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인 이 책을 어떻게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먼저 이 책이 탐구하고 있는 이야기의 다양한 존재 양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독이 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야기는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능동적인 존재로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형상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야기를 매개로 소통을 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령이 자신만 알기 위해 이야기들을 감추는 행위는 곧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자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알고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직접 해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는 다른 친구들의 적극적 호응과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아이는 이야기하기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말잇기처럼 돌아가며 한 문장씩 만들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예측할 수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에 환호성을 지르게 될 것입니다. 책에서 사용된 단어를 이용해 문장을 만드는 것 역시 단어라는 맹아 속에 담긴 이야기의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이용하더라도 아이들마다 다른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하나의 단어 속에 담긴 이야기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책은 경험의 매체이다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곤 합니다. 꼭 전체를 다시 읽을 필요도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읽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야 책은 우리의 몸에 체화되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간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억들이 많이 쌓일수록 지혜 역시 자라날 수 있게 됩니다. 몸으로 읽어낸 책은 단순히 지식으로 간직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 무의식적으로 작용해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그런 독서가 될 수 있도록 책의 모든 것을 활용해 아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전통혼례가 치뤄지는 초례청의 풍경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식 사진을 본 적이 있는지, 혹은 그림에서처럼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올렸거나 그 광경을 직접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킵니다. 그런 다음 그림을 꼼꼼히 보면서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찾아보면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하늘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차일이며 신랑과 신부의 뒤 편에 배경을 이루며 아름답게 둘러쳐진 병풍, 갖가지 음식이 수북히 쌓인 제단 위에 은은히 불타고 있는 한 쌍의 화촉 등 아이들이 궁금한 것 투성이입니다. 그림만으로 부족하다면 전통혼례를 치루는 동영상을 함께 시청한 뒤 아이들과 소감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수업을 했다고 해서 아이들이 책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고 기대해서는 곤란합니다. 그저 책을 읽는 몇 가지 요령을 간단하게 배웠다고 보면 됩니다. 진정한 독서는 집으로 가서 수업을 했던 책을 꺼내어 다시 읽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순전히 재미로 책을 읽고, 읽다가 궁금해서 다른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자신이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구절을 새롭게 음미하며 자신만의 책 읽기를 시작하게 될 때 그 때야 바로소 그 아이는 책을 읽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간혹 읽으며 밑줄을 쳐 놓았거나 여백에 메모해 두었던 것들을 수 년 뒤에 다시 발견하게 된다면 과거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책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래서 책 읽기는 책을 읽는 자신에 대한 읽기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또 책을 읽는 자신의 생각도 읽으며 생각은 점차 여물어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