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중2

세르반테스/김정우 번역, 돈키호테, 푸른숲주니어

ddolappa72 2026. 3. 29. 01:10

 
키하노는 왜 편력기사가 되고 싶었을까

기사도 이야기는 비범한 인간이 편력을 하며 벌이는 영웅적인 모험담을 다룬 글을 말합니다. 아서 왕과 열두 명의 원탁의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터무니없고 황당한 이야기들이라 기사 소설이란 장르 자체가 16세기 이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기사도 소설 읽기에 밤낮으로 몰두하던 키하노는 편력기사가 되어 세상을 떠돌며 악을 바로잡고, 불행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정신나간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미 사라진 중세의 기사를 꿈꾼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 책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혼동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되려는 그의 소망은 단순히 '좋았던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새로운 시대의 기사도 정신을 요구한다"고 믿었습니다. 즉 그의 기사 되기는 과거의 형식을 차용해서 자신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내용으로 다시 채우려는 시도였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타락할 대로 타락해 저급한 야망이 난무하는 시대"로 냉철하게 진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정신이 나간 미치광이는 아니었습니다.

책을 세상과 일치시키려는 욕망 역시 어리석은 광기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책을 읽고, 또 읽어서 결국 세상을 책에 따르도록 변화시키겠다는 혁명가의 다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상해질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던 마르틴 루터는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성서의 가르침에 따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황, 추기경, 대주교, 수도원, 면죄부 같은 것은 성서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고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책읽기가 곧 혁명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명했습니다.(사사키 아타루/송태욱 번역,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자음과 모음) 기사도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던 키하노가 한 일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또한 키하노에게 편력기사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지식이라 할 수 있는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처절한 사투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에게 모험은 스스로를 위험천만한 현실에 내동댕이침으로써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자각하고, 스스로를 살아 있는 존재로 입증하기 위한 목숨을 건 투쟁 그 자체였습니다. 

흔히 <돈키호테>를 최초의 소설로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게오르크 루카치는 “소설은 현대의 문제적 개인(주인공)이 본래의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나서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찬 자기인식에로의 여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형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루시앙 골드만 역시 "소설이란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형태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이 둘의 소설 정의가 공유하고 있는 핵심은 소설이란 장르는 개인과 사회의 불화가 극심해진 시기에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타락할 대로 타락해 저급한 야망이 난무하는 시대", "영혼이 거쳐 가는 길고 어두운 밤"으로 평가한 세르반테스의 인식은 바로 그러한 불화를 극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피카소가의 '돈키호테'(1955)



돈키호테는 미쳤던 것일까, 미친 척을 했을 뿐일까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의 스페인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계몽주의가 꽃피고 과학기술이 발전할 때 종교 개혁에 대항하는 거점국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482년 국가적 차원에서 최초로 종교 재판소를 설치했고, 1822년 문을 닫을 때까지 총 34만 1,021명을 종교 재판에 회부해서 구중 10퍼센트를 화형히나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그 결과 스페인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조차 누릴 수 없었고, 미치지 않으면 그야말로 돌아 버릴 것 같은 인간성 말살의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안영옥, 돈키호테를 읽다, 열린책들) 그 시대는 철석같이 믿고 있던 모든 것이 의문스러워지는 절망의 시기였으며 "영혼이 거쳐 가는 길고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가 귀향하던 중 해적에 붙잡혀 5년간 알제리에 붙잡혀 있어야 했고, 세금 징수원으로 일을 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채 돈키호테를 구상했던 세르반테스에게 자신이 살아야 했던 세상 전체는 일종의 자유가 없는 감옥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종자여! 인생에서 자유보다 더 좋은 보물은 없는 것 같구나." 이런 세르반테스에게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미쳐 버린 사람"이 되기를 강요했지만, 그는 그 대신 "좋아서 미치광이가 된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즉 돈키호테의 광기는 종교적 광기에 휩싸인 그 시대의 시선을 비껴가기 위한 일종의 회피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여행 도중 국왕의 명령에 따라 갤리선의 노예로 끌려가는 죄수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곤 산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럼 저들이 자기 의지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끌려가는 것이란 말이야?" 그러자 산초는 지은 죄가 있어 노역형을 받았으니 자기 의지로 간다고 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듣자 돈키호테는 호송하던 병력을 쓰러뜨리고 그들을 풀어주었습니다. 국왕의 명령에 거역한 이 장면은 당시의 기준으로 검열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친 광인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그려져 감시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분명한 점은 돈키호테가, 아니 세르반테스가 자기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을 지독히 혐오했으며 인간의 자유를 왕권보다 소중한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안영옥이 번역한 '돈키호테' 1~2권



돈키호테는 왜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을까

알론소 키하노는 편력기사가 된 자신을 '라만차의 돈키호테'라 불렀습니다. 키하노가 개종한 유대인들이 많이 살던 라만차 지역의 늙은 가난한 이달고(작위가 없는 귀족)이었다면, 스페인에서 경칭으로 사용되던 '돈(Don)'을 붙인 '돈키호테'는 그의 상상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이상적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죽음이 임박한 침대에 누운 채 키하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이제 라 만차의 돈 키호테가 아니라 알론소 키하노라네." 키하노는 편력기사가 되어 모험을 하는 순간에만 돈키호테가 될 수 있었고, 더 이상 모험을 할 수 없게 되자 다시 키하노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 속에 잠든 것은 이달고였던 키하노였으므로 돈키호테는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서 숨쉬고 있는 건 무덤 속 이달고가 아니라 풍차를 향해 달려들던 돈키호테라는 것 역시 죽음도 이기지 못한 그의 사후적 명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돈키호테는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던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돈키호테는 왜 풍차를 향해 돌진하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약 그의 눈에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이 풍차가 아니라 무찔러야 할 거대한 괴물이었다면 그가 돌격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편력기사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돈키호테는 현실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기사도 이야기에 맞게 변형시켜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가정부가 버린 딱딱한 판지는 얼굴 가리개가 되고, 늙은 말은 로시난테로, 농사꾼의 딸은 둘시네아 공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시인의 세계 인식 방식과 흡사합니다.

"아야!
아유, 아파."
책상 모서릴 흘겨보았다.
"내 잘못 아냐."
모서리도 눈을 흘긴다.

쏘아보는 그 눈빛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어쩜 내게도
저런 모서리가 있을지 몰라.
(이혜영의 시 '모서리' 중 일부)

위 시에서 책상의 모서리는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시적 화자에게 눈을 흘깁니다. 그 눈빛에 주눅이 들은 시적 화자는 자신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서리'를 발견해 냅니다. 그런데 시의 1연과 2연에 나온 '모서리'는 표기는 같지만 서로 다른 지시대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연의 '모서리'는 물리적 현실로 존재하는 책상의 모서리이지만, 2연의 '모서리'는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을 지도 모를 나의 말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풍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주의자인 산초의 눈에 풍차로 보였을지 모를 대상이 편력기사였던 돈키호테의 눈에는 거대한 괴물로 보였을 뿐입니다. 만약 돈키호테를 미쳤다고 비난한다면, 세상의 모든 시인들 역시 동일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심지어 돈키호테의 인식 방식에는 나름 실용주의적인 면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에 쓰고 다니는 것을 무엇이라 부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다수가 '모자'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이발사가 비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쓰고 가던 놋쇠 세숫대야를 '황금빛 맘브리노 투구'라고 생각하고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벌여 빼앗아 썼습니다. 돈키호테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듯이 사물의 존재 역시 그 쓰임새를 통해 입증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용되는 모습을 통해 사물의 진실된 모습에 접근하려는 돈키호테의 태도는 "온통 가면과 그림자뿐"인 속임수로 가득한 세상에서 진짜 모습을 찾으려는 그만의 해결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햄릿이냐 돈키호테냐

셰익스피어의 <햄릿>(1601)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605)는 동시대에 탄생했지만 상반되는 인물 유형으로 많이 비교되는 작품들입니다. 이 둘의 비교는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에세이 <햄릿과 돈키호테>가 그 시초입니다.(투르게네프/임경민,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지식여행) 그는 햄릿을 "철저한 자기분석과 이기주의, 불신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인물"로 평가하고, "용감하고 자유로우며 앞뒤 재지 않고 행동하는 인물"인 돈키호테와 대비시켰습니다. 햄릿과 돈키호테는 단순히 심리적 분석 대상에 머물지 않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두 가지 인간 유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이는 투르게네프가 이 글을 썼던 시점에 러시아는 농노제의 폐지가 임박했고, 구세대와 신세대의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격변기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들이 햄릿처럼 사변에 몰두하느라 자기연민과 나태에 빠져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실패로 끝날지라도 돈키호테처럼 열정적으로 더 높은 시대적 가치에 헌신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흔히 햄릿은 생각이 너무 많아 우유부단한 인물로, 반면에 돈키호테는 이상에 치우친 나머지 무모한 인물로 평가하곤 하는데, 막상 실제 작품을 읽어보면 그들의 성격은 그렇게 단순화시킬 수 없을 만큼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감옥'으로 받아들였고, 명예를 지키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세상과 치열하게 투쟁을 벌였다는 공통점이 눈에 띕니다. 모두가 의심스럽고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궁정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 헤매며 고전분투하는 햄릿이나 온세상이 가면과 그림자의 너울의 뒤집어 쓴 채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 맞서서 진실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진 돈키호테는 어쩌면 한 시대의 이란성 쌍둥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햄릿 역시 돈키호테처럼 미쳤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미쳤다'는 표현은 정상이 아니라는 수치의 징표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비정상이 정상으로 간주되는 전도된 현실에 맞서서 끝까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결국 시대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영웅들을 기리는 찬란한 훈장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지금도 떨쳐낼 수 없는 꿈을 향해 쏟아지는 폭풍을 거슬러 달려가는 이 시대의 모든 청춘들에게 패닉의 '로시난테'를 들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