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기억을 더 오래, 더 멀리 가게 한다
감정은 기억을 더 오래, 더 멀리 가게 한다
4학년 어느 봄날 오후 아무도 없는 집의 서늘한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있었습니다. 점차 벅차오르던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가까스로 책장을 넘기던 저는 제제가 뽀르뚜까 아저씨의 죽음을 알아챈 장면에서 책을 내려놓은 채 대성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볼품없는 라임오렌지 나무에게 밍기뉴라 이름 붙이고 말을 건내야 했을 만큼 외로웠던 소년에게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아저씨가 기차 사고로 죽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이미 주인공 제제와 감정적 동화가 되어 있던 어린 저는 한참이나 커다란 파도처럼 제 영혼을 집어삼킨 상실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끝에 책을 다시 집어들었던 건 과연 제제가 이 크나큰 슬픔을 어떻게 이겨낼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아내고 다시 책을 집어들기를 반복한 끝에 간신히 독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날 오후 저를 둘러싼 풍경, 제 가슴을 고통스럽게 했던 문장들, 주체못할 만큼 뜨겁게 용솟음치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껏 제가 읽어온 책들 중에서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고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것들은 제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고, 불에 데인 것처럼 오랫 동안 제 영혼에 강렬한 인장을 남겼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 상당수가 청소년기에 마구잡이로 읽어댔던 수많은 소설들인 것을 보면 확실히 책을 읽는 것도 때가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완전히 그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독서 덕택에 수 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 때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뇌과학 관련 책들을 읽다 보니 감정적 각인이 강하게 될 수록 더 오랫 동안 기억된다고 합니다.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강하게 반응한 사건일수록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해마에 더 또렷이 각인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독서는 문자를 읽고 해독하는 작업이지만, 우리 뇌 속의 거울 뉴런은 허구적 인물의 고통을 나의 감각 경험에 비추어 시뮬레이션해서 마치 우리가 실제로 고통을 겪는 것 같은 환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제제가 경험한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마치 저의 것인양 공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 봐
그래서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 인물들의 감정이나 심리 상태에 특별히 주목하도록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물들이 속해 있는 환경과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객관적 환경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갖고 있어야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유추할 수 있고, 그들의 선택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아이들만의 언어로 표현해보도록 합니다. 타인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봄으로써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힘도 커지고,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능력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안데르센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 열심히 일했지만, 나이가 들어 기력이 빠지자 쓸모없다며 버림받은 존재들입니다. 한때는 자신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기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했던 이들로부터 매몰차게 외면당하고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길 위험에 처한 동물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주인에게 버림받았을 때 동물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표현해 보도록 했습니다. 짜증난다, 화가 난다, 억울하다, 슬프다, 고통스럽다, 어이없다, 황당하다, 배신감을 느낀다, 분노한다, 복수하고 싶다 등 다양한 표현들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어휘들을 풍부하게 알고 있을수록 세상을 다채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감정에 관련된 단어들은 아이들이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나올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공감 능력을 키워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와 하는 수업에서 되도록이면 '착하다', '재미있다', '나쁘다'와 같은 아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들을 바꾸어 쓰도록 합니다. '주인공이 착하다'라고 말하면 도대체 주인공의 어떤 점이 착하다고 생각하는지, '착하다'라는 단어 대신에 바꿔 쓸 수 있는 말은 없는지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세상을 상투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때로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게으름의 표시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착하다'라는 단어 안에 내재한 다채롭고 풍부한 감각들을 이끌어내야 생각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글쓰기에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겨 있다
책을 읽은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든 글로 써야 합니다. 자신이 읽은 것을 글로 정리해 봄으로써 책의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객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제3자의 눈으로 다시 점검할 수도 있습니다. 즉 글쓰기 자체가 일종의 메타인지 과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글쓰기는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가령, 도둑들로부터 집을 빼앗은 브레멘의 동물들은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은 음악대가 되기 위해 다시 브레멘으로 떠났을까? 아니며 숲 속의 집에 머물러 살았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도둑들이 다시 집을 되찾으러 습격해오진 않았을까? 작가가 비워 놓은 공백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으로 채워가다 보면 이야기가 훨씬 풍부하고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뒷이야기 쓰기를 종종 시키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들이 쓰는 단어들이나 문장 부호들, 문장의 구조, 이야기 전개 방식 등 모든 것들이 아이들의 생각이 외화된 표현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의 흐름들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가) 어느날 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이 잠시 산책을 하고 왔어요. 그때 당나귀, 수탉, 개, 고양이는 뭔가 익숙한 곳에 왔어요. 보니까 예전에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주인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더 다가가서 봤더니 자신들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동물들은 감동을 받아서 자신들의 집에 초대했습니다. 주인들이 낯선 집에 가니까 자신들이 죽이려고 한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주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동물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2학년 학생의 글)
인용된 글을 쓴 학생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먼저 고백하자면 이 학생의 글을 읽고 잠시 당황을 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아이들은 동물들의 고된 삶을 위로라도 하듯 그들의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유쾌하게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초등학교 2학년다운 글쓰기라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처음으로 동물들과 주인들이 화해하는 글을 썼습니다. 주인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들에게서 달아난 동물들을 그리워했고, 동물들은 그런 주인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숲 속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버림받은 동물들의 처지를 유독 안타깝게 여겼던 이 학생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들에게 베불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주인들과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특한 생각입니까.
아이들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서 그 핵심으로 곧바로 파고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학생의 글을 읽다 문득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또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용서해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살 만한 곳이 될지 생각헤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살이가 점차 더 강퍅해진다고 느끼게 되는 건 잘못한 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더 뻔뻔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그럴수록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이 용서는커녕 더욱 모질게 마음먹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드의 싯구가 새삼스러워지던 학생의 글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