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데 라 페냐/김경미 번역, 행복을 나르는 버스, 비룡소

궁금한게 많은 소년과 지혜로운 할머니
아이들은 이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한 것도 많고, 궁금한 게 많으니 끊임없이 질문을 해댑니다. 간혹 너무나 지겨울 정도로 말이지요. 이 책의 주인공 시제이도 호기심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할머니한테 질문을 던집니다. 비가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친구들은 가지 않는 무료 급식소를 왜 자신은 가야 하는지, 시각장애인 아저씨는 왜 보지 못하는지 등등.
그런데 아이들이 대책없이 쏟아내는 이런 난감한 질문들에 어른들은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좋은 것일까요? 가령 비는 왜 오는지 묻는 아이한테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까요? 강이나 바다의 물이 태양의 열을 받아 온도가 높아지면서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고,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차가운 공기를 만나 구름이 되고, 구름 속 물방울이 점점 뭉쳐서 무거워지면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비라고 설명하면 충분할까요? 아이들의 수준이나 상황에 따라 이런 과학적 답변이 유익할 때도 있겠지만, 이 책의 할머니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시적으로 대답합니다. "나무도 목이 많이 마르거든."
시각장애인이 왜 볼 수 없는가와 같은 난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할머니는 슬기롭게 대답합니다. "꼭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무료 급식을 하기 위해 방문한 슬럼가 지역에 대해 "왜 여기는 맨날 이렇게 지저분해요?"라고 묻는 손자에게 할머니가 온화한 미소와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책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 있단다. 늘 무심코 지나치다 보니 알아보지 못할 뿐이야." 인생을 잘 살아온 나이든 세대가 그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는 이런 해답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릅니다.

함께 타고가는 버스라는 세상
시제이가 할머니와 함께 탑승한 버스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항상 신기한 동전 마술로 시제이를 놀라게 하는 데니스 기사 아저씨, 기타 줄을 맞추고 있는 중절모를 쓴 청년, 머리에 보자기를 두르고 나비가 든 유리병을 안고 있는 안경을 쓴 할머니, 점박이 강아지와 함께 버스에 올라탄 멋쟁이 시각장애인 아저씨 등. 우리 역시 시제이가 버스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버스 안에서 즉흥 연주회가 열리고, 아름다운 음악 소리는 마법처럼 시제이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눈을 감을수록 더 선명하게 보이는 그곳에선 붉은 노을이 바다 물결 위해서 피어오르고, 새들이 하늘을 미끄러지듯 날아다녔습니다. 유리병 속 나비들이 달빛 속에서 자유롭게 훨훨 춤추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시제이의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환상은 우리의 누추한 현실 안에 내재한 유토피아의 가능성입니다. 음악은 인종, 성별, 나이, 세대, 계층을 뛰어 넘어 그들을 조화롭게 하나로 묶어주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이 귀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시제이는 예술의 힘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나
시제이는 마침내 무료 급식소가 있는 마지막 장류장 '마켓 스트리트'에 도착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슬럼가답게 부서진 보도와 망가진 문, 낙서로 뒤덮인 유리창과 굳게 닫힌 상점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여기는 왜 맨날 이렇게 지저분하냐는 손자의 짜증섞인 불만에 할머니는 방긋 웃으며 대답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나 있단다." 할머니의 말에 시제이는 다시 주위를 둘러 봅니다. 깨졌지만 여전히 불을 밝히는 낡은 가로등, 길 잃은 고양이의 그림자, 지저분한 건물들 사이로 둥글게 솟아오른 무지개. 할머니의 말처럼 망가지고 추레한 것들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사이에서 항상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내는 할머니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보잘것없고 미약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것들을 우리는 '희망'이라 부릅니다. 추함과 절망 속에서 아름다움과 희망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시제이는 이제야 어렴풋이 할머니가 왜 매주 자신을 무료 급식소에 데려오는지 알 것 같습니다. 굶주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곧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내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시제이는 할머니로부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라는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고 있던 것입니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아름답게 고쳐나갈 의무와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시제이 할머니께서는 몸소 실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