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어느 섣달 그믐날, 여우오줌

시간의 문턱인 섣달 그믐날
소설에서 시간과 공간은 흔히 인물들이 살아가면서 활동하는 배경 정도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래서 '시간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과 같은 용어도 사용되고, 또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 지식'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시간과 공간은 단순히 인물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장식적으로만 존재하는 배경으로 머물지 않고, 그들의 욕망과 행동을 규제하는 규범적 틀로 작동하기도 하고, 나아가 작품 전체의 미적 질서를 형상화하고 작품의 주제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중립국을 향하던 배나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안개의 도시 무진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권정생의 동화 '어느 섣달 그믐날'에서 '섣달 그믐'이란 시간과 '한길가 노점상'이란 공간은 작품의 미학적 구조와 주제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한 해의 끝과 다른 한 해의 시작에 위치한 문턱으로서의 시간은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부라는 공간과 조응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은 그러한 특수한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노점상들의 삶을 주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먼저 '섣달'은 한 해를 다 보내고 새해 설날을 맞게 된다는 뜻의 '설윗달' 또는 '서웃달'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섣달을 겨울 중 가장 춥고 긴 달로 여겼습니다. '그믐'은 '어두워지다'의 뜻을 지닌 동사 '그믈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음력으로 그 달의 마지막 날'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뜻합니다. 윤극영이 작사한 동요 '설날'에서 정월 초하루의 전날인 이 날은 '까치설날'로 지칭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가는 왜 하필 '섣달 그믐'이란 시간을 선택한 것일까요? 이 즈음 수많은 대중매체들은 마치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가 불연듯 기억이 난 듯 '연말연시에 불우이웃을 도와야 한다'며 수없이 되뇌곤 합니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움이 간절한 이웃들은 깊은 망각 속에 빠져들고 차갑게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작가는 바로 이 '연말연시'라는 가치중립적이고 한시적인 언사에 반기를 들고 '섣달 그믐'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웃들은 1년 내내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들에게 '섣달 그믐'은 일 년 중 한 시기가 아니라 삶의 조건 그 자체인 셈입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이 동화의 등장인물들은 "시장 골목길에서도 훨씬 바깥쪽으로 나온 한길"에 노점을 펼쳐놓고 싸구려 작업복이나 떡볶이, 강냉이 튀김, 사과 따위를 팔며 살아가는 상인들입니다. 평소 길가에서 노점상들을 본 적이 있는 아이들은 쉽게 작품 속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본 경험이 있는 노점상들과 작품에서 그려지는 노점상들을 등치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칠판에 그림을 그려서 아이들에게 작품 속 노점상들이 위치한 공간을 명확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자마자 아이들은 노점상들은 왜 시장에서 물건을 팔지 않는지 의아해 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려면 계약을 해서 점포를 임대받아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길가에서 무허가로 물건을 파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한길'은 차가 다니는 '큰길' 또는 '신작로' 등을 의미하며, 그들은 사람 대신 차가 다니는 길 주변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경찰이 단속을 나오면 강제로 체포되거나 철거되기 때문에 항상 안절부절하며 지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노점상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공간과 그들의 처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부인회 회원들의 행태를 깊이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얀 천에 커다란 글씨로 "불우 이웃 돕기"라 써 붙인 까만 승용차를 탄 채 가난한 노점상들을 신경질적으로 밀치고 지나갔습니다. 덕지덕지 벌려놓은 좌대를 부랴부략 치워야 했던 노점상인들은 차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갑자기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불우 이웃이 저쪽 어딘가에 있나 보지?"
이 장면에서 부녀회의 위선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나 손쉽기 때문에 피상적인 독서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왜 노점상인들을 그들이 돕고자 했던 '불우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질문해야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노점상들을 법 바깥에 존재하는 거추장스럽고 경멸스러운 잉여적 존재들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점들은 그들이 최종 목적지로 삼은 '불우 이웃'을 향한 길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이기에 거추장스럽고, 생존을 위해 불법을 자행하기 있기 때문에 경멸스러우며, 최소한의 경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그들이 생색을 내고자 하는 '불우 이웃'조차 되지 못하는 열외적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비록 살아 있다고 하나 법적 보호로부터 배제된 '벌거벗은 삶' 즉, '호모 사케르(Homo Sacer)'였던 것입니다.


섣달 그믐날에 담긴 상호부조의 정신
이 작품의 비범함은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 스스로가 당당하게 자신들을 긍정하는 목소리를 내도록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결코 불우하지는 않단다." 이 목소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불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을 산산조각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콩나물과 고기 반 근, 그리고 동태 한 마리로 설을 쇨 망정 자신이 팔 사과를 서로 나누고 이웃 아이에게 연하장을 건낼 만큼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양재기에 국물 한 그릇을 퍼 담아 이웃과 나눠 마시며 추위에 언 몸을 녹일 만큼 배려심이 넘치며, 겨우 실 두 타래, 바늘 석 쌈을 팔았으면 그만이라 생각할 만큼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노점상인들은 언론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부녀회의 '불우 이웃'도 되지 못해서 열악하기 그지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오히려 떳떳하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가능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돕는 상호부조의 정신에 있습니다. "진화의 한 요인인 상호부조는 어떤 개체가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종이 유지되고 더 발전하도록 보증해주면서 그런 습성과 성격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어쩌면 상호투쟁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크로포트킨/김영범 번역, 만물은 서로 돕는다, 르네상스)
섣달 그믐날의 세시풍속 중에 담치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만 있거나 쌀이 없어 떡도 못하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몰래 담 너머로 쌀이나 잡곡을 던져주던 풍습입니다. 당사자는 누가 던져 주었는지 몰랐고, 설령 알더라도 모른 체했습니다. 그것이 이웃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으면서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에 대한 유일한 고마움의 표시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작가 권정생이 이 동화를 통해 환기시키고 싶었던 것은 상호부조의 아름다운 전통이었을지 모릅니다.

독서는 경험이다
1990년대 초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신경과학자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의 연구 팀은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한 과학자가 무언가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행동을 지켜보던 원숭이의 뇌가 마치 원숭이 자신이 무엇을 집어들기라도 하듯 관련된 뇌 부위가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거울뉴런'이란 신경세포는 이렇게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타인의 행동을 마치 거울처럼 반사하는 신경세포란 뜻을 지닌 거울뉴런이 원숭이 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타인의 행동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흉내 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이 뉴런 덕택에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상상 속에서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고, 타인의 마음상태를 흉내 냄으로써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 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거울뉴런 덕택에 인간은 타인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타인의 행동을 묘사하는 글을 읽을 때에도 그 행동을 마치 자기 자신의 행동인 양 뇌 속에서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문학가들이 '감정이입empathy'이라 불러오던 현상이 신경생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석영중, 뇌를 훔친 소설가, 예담)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가 책에서 묘사된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감정이입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활동인 셈입니다. 즉 독서 자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활동에 못지 않은 경험의 보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독서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을까요?

우선 아이들한테 동화 속 주인공인 영이가 되어 섣달 그믐날 방문한 시장에서 본 것들, 들리는 소리, 그리고 맡은 냄새들을 상상해 보도록 했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들을 동원해서 상상의 세계를 구체화시켜 봄으로써 아이들은 허구의 세계를 마치 실제하는 것처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섣달 그믐'이란 시간과 '한길가 노점상'이란 공간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 역시 아이들이 가상의 세계를 현실처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사전 조치였습니다.
그런 다음 영이의 입장에서 그 날 있었던 일을 일기로 재구성해 보도록 했습니다. 글쓰기는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혼란스러운 경험에 일관된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도 아이들마다 다른 내용의 일기를 썼다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영이가 노점 상인들로부터 선물 받은 것을 중점으로 썼고, 또 어떤 아이는 가난을 주제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책을 읽거나 동일한 사건을 함께 겪더라도 아이들마다 관심의 정도나 이해도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각자가 쓴 글을 돌려서 읽으며 아이들 스스로 서로가 얼마나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깨닫도록 했습니다. '다름'과 '차이'는 교육적인 실패나 극복해야 할 난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고 주체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교육적 덕목입니다.




